겨울의 문턱이다.
황금 들녘은 수확후 스산해지고 들녘 어귀의 억새는 모두가 환한 모습이다. 향교의 행단에는 노오란 은행잎으로 물들고 산자락의 빨간 단풍은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우리의 생활공간에서 느껴지는 늦가을 정취는 아름다우면서도 소슬바람과 함께 쓸쓸함과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숨이 가쁘게 달려온 한해의 삶
무엇이 우리에게 허무감을 주고 결과를 허탈하게 했는가? 허무가 무엇인지 묻고싶다. 허무, 허망, 허탈, 그것은 만족에서 오는 산물인지도 모른다. 뜻깊게 보낸 일년의 결과에 만족을 느낀후의 정서 그것이 허무였다면 허무는 새로운 희망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알게된다.
해야할 일, 하지 말아야할 일, 그리고 꼭 가지고 가야할 일과 버리고 가야할 일 까지도 함께 해야할 일도 무리해서는 않되는 일까지 우리는 살면서 지혜로 다 터득했다. 하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있기에 언제나 삶의 무게가 되어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에 그 무게가 짐이되어 고통스럽다. 선을 행하고 신앙에 의존하고 수양이 부족함이 아니라 이미 깨달은 존재를 실행하지 못함이 문제인 것이다. 스스로를 맑게 살려면 필요한 것은 절제다.
금연과 금주를 머리맡에 두고 살면서도 끊어내지 못하고 사는 고통처럼 스스로 자기 욕망과 욕구를 억제하고 절제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끊어내지 못하고 유혹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맘속 깊은 곳에 욕망과 욕구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 때 그를 냉철히 거절하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면 다 잡은 마음 평생 고통의 늪으로 다시 빠져들고 만다. 깨달았으면 당장 실행하라.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깨닫고 하루를 산다면 조금은 부족하지만 작은 것 하나가 소중함을 알게되고 맑고 순수한 마음의 평안이 나를 찾을 것이다.
우리의 욕구는 무한하다.
생리적 욕구에서 자아실현 욕구까지 문제는 욕구는 충족할수 없다는데 있다. 어느 선에서 만족을 느끼느냐에 따라 편함과 불안이 갈라진다. 행복의 조건들은 완벽하고 만족할 만한 것들이 아니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이다. 재산이든 외모이든 명예든 모자람 없이 완벽한 상태를 원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근심과 불안이 쌓여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행복에는 조건이 없다.
굳이 조건을 붙인다면 순수하고 맑고 겸허한 마음 그리고 절제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따끈한 군고구마 까먹으며 함께 이야기 나누는 여유를 즐기는 한해였으면 더없는 행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