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 석 기
부안서림신문대표 |
ⓒ 디지털 부안일보 |
2009년 8월, 서림신문이 21돌의 생일을 맞이했다.
서림신문의 창간 일을 기억하고 있는 각계각층 독자들의 축하전화가 빗발치고 축전이 책상위에 수북이 쌓여도 그리 즐겁지가 않다.
생일날이, 우리나라의 큰 획을 긋고 떠나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기간이라서가 아니라, 21살의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 끼우며 넘어지려 할땐 곧바로 중심을 잡아주던 수많은 독자들과 필자의 선후배들이 하나의 영상물이 되어 눈앞을 스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명 되지않는 신문사 식구들과 식사한끼 함께하는 조촐한 생일잔치마저 준비할수 없었던 아픈 마음도 아픈 마음이지만, 지금껏 돌보아준 독자들과 선후배들에게 이렇다 할 보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더욱 마음이 아픈 하루였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도 서림신문과 연을 맺고있는 선후배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이석기기를 알면 그것이 곧 고생의 시작이다”고…….
이에 맞장구치는 또 다른 선후배들의 말이있다.
“쥐뿔도 없는것이 일은 꼬박꼬박 터트린다. 제발 돈 되는 일좀 했으면 좋겠다.”고…….
틀린말은 아니다. 뒤돌아보면 필자를 알아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직계 가족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수많은 선후배들이 필자로 인해 아니, 서림신문으로 인해 고생했고 앞으로도 고생할일만 보인다.
이 같은 선후배들의 고생이 오늘의 서림신문, 21살 청년의 서림신문으로 만들지 않았다 싶다.
그럼에도 그 선후배들은 도망치지 않고 서림신문사에서 벌이는 일이라면 또 고생을 자처하고 나선다.
“힘들고 고생은 되더라도 보람있는 일이다”는게 이들 선후배들의 한 목소리다.
고마울 뿐이다.
막노동에 가까운 각종 행사를 잘들도 처리해 낸다.
무보수 막노동에 아무리 힘이 들어도 성질나쁜 필자의 이야기를 잘도 따라준다.
세계프로레슬링의 우상 박치기 왕 김일 선수와 후계자 이왕표, 노지심 등 30여명의 국내외 선수를 부안으로 끌어들여 세계프로레슬링 챔피언 타이틀매치를 두 번씩이나 치르는 고생에도 이들 선후배들은 말이 없었다.
벌써 5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매년 1월 1일 해돋이 행사인 썬키스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손발이 얼고 밤새 눈 치우는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이들 선후배들은 군말 한마디 없다.
어디 그뿐인가, 두 차례의 세계적인 테너 박인수초청공연과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희아초청 공연, 32차례의 부안군민노래자랑 등 헤아릴 수 없는 21년 동안의 각종 행사에 이들 선후배들은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대박을 만들어 낸 제1회 ‘님의 뽕’ 축제에서 6일간의 중노동에도 도망치는 선후배는 없었다.
모두가 ‘공익적 행사’라는데 신바람이 나 있는 것이다.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행사를 준비해도 누구하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해주는 사람 없어도 이들은 또 ‘공익적 행사’를 만들어 낸다.
21살의 청년으로 키워 온 서림신문 독자들과 필자의 선후배들이 이날따라 더욱 보고픈 하루였다.
고생스런 일을 시작할 때마다 이들에게 하는 필자의 말이 있다.
“당신들에게 진 빚, 죽을 때까지 갚지 못한다. 다만 나보다 우리를 위해 살겠노라”고…….
오늘도 다짐해본다.
서림신문을 21년 동안 키워준 독자여러분과 부안군민에게 보답하는 길, 나보다도 우리를 위해 사는 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