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지금 전북의 처지가 꼭 그렇다. 최근 RE100을 기반으로 한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와 삼성 등 첨단기업의 호남권 투자 무게중심이 광주·전남으로 기울고 있다는 소식은 새만금 부안권에 국가산단 유치를 위해 지난 수개월 동안 온 힘을 다해 뛰어온 부안군민들에게 허탈감과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다.
물론 아직 모든 것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만 놓고 보면 "큰 고기는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지역사회에 퍼지고 있다.
사실 이러한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광주·전남은 지난해부터 RE100 산업이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산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했다. 전문가들을 초청해 공무원 교육을 실시했고, 도민 대상 강연과 토론회를 이어갔다. RE100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왜 광주·전남이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언론도 달랐다.
지역 신문과 방송은 한목소리로 국가산단 유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방송사들은 토론회와 설명회를 생중계하며 도민들의 공감대를 넓혔다. 정치권과 행정, 언론, 산업계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뿐만아니라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당선인은, 이미 삼성반도체 유치를 첫 번째 과제로 삼은듯 인수위원회(공식 명칭 : 전남광주대전환기획위원회) 위원장에, 반도체 전문가인 전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정은승 전북 출신(전주고)을 내정했다.
결국 지역 전체가 하나의 응원단이 된 것이다.
반면 전북은 어땠는가.
새만금이라는 넓은 부지만 있으면 기업은 당연히 찾아올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땅은 우리가 가장 넓다."
"새만금밖에 없다."
이런 전북도의 자신감이 어느 순간 자만심으로 변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정작 RE100이 왜 전북이어야 하는지, 왜 새만금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논리 개발과 도민 공감대 형성은 부족했다. 도민들의 관심도 크지 않았고, 언론 역시 지속적인 의제화에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기업은 넓은 땅만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
기업은 정책 의지와 행정 지원, 인재 양성, 지역사회의 열정과 미래 비전을 함께 본다.
그런 점에서 광주·전남은 준비했고, 전북은 기다렸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최근 반도체 전문기자로 오랫동안 호남권 반도체 산업 육성을 주장해 온 오마이뉴스 이봉열 기자가 자신의 SNS에 남긴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기자는 이원택 전북자치도지사 당선자의 예산확보 SNS 캡쳐 사진과 함께 "어렵게 고기를 발라 입에 넣어주려 하는데도 먼산만 바라보고 받아먹지 않는 아이를 보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호남에 반도체 팹을 짓겠다는데 그런 것보다 지역예산이나 따오겠다는 단체장을 보는 것 같다"는 취지의 글도 남겼다.
표현은 다소 거칠 수 있다.
그러나 그 글 속에는 전북 정치권을 향한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담겨 있다.
지역의 미래 산업보다 당장의 예산 확보가 더 중요한 정치가 계속된다면 전북의 미래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예산은 언젠가 소진된다.
하지만 산업은 수십 년 동안 일자리를 만들고 인재를 키우며 지역경제를 움직인다.
오늘의 산업정책은 내일의 도시를 만든다. 그래서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가 중요하다.
부안군민들은 지난 수개월 동안 새만금 RE100 국가산단 유치를 위해 거리에서 목소리를 냈고, 천막농성을 이어갔으며, 정부와 국회를 찾아다녔다.
그 절박함은 결코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지역이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그 절박함이 전북 전체의 움직임으로 확산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지역의 미래를 특정 시·군만의 문제로 바라본 순간 이미 경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광주·전남은 지역 전체가 함께 뛰었다.
전북은 일부 지역만 뛰었다.
그 차이가 오늘의 결과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설령 이번 기회를 놓친다 하더라도 또 다른 기회는 찾아올 수 있다.
다만 그 기회는 준비된 지역에게만 돌아간다.
전북은 이제라도 RE100과 AI, 반도체, 이차전지 등 미래 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정치권과 행정, 기업, 대학, 언론, 도민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아야 한다.
지역의 미래는 누군가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기회는 전북의 차례가 될 수 있다.
예전에는 호남이라고 하면 광주·전남과 전북이 함께 묶였다.
그러나 지금의 산업 경쟁력을 보면 전북은 스스로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래서 "이제 전북은 호남도 아닌 '호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생각까지 든다.
‘호북’은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북이'란 뜻이다.
호랑이가 살아있을땐 그 누구도 무서워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다가 죽어서 북이되니 이놈도 쳐보고 저놈도 쳐보는 꼴이다.
'호북'은 누가 두두리거나 쳐보든, 이렇다할 항변없이 아프다는 소리만 낼뿐이다.
우리 전북이 지금 그런꼴 아닌가 싶다.
물론 이것이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이 단순한 자조로 끝나도록 만드는 것이 지금 전북 정치와 행정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다.
새만금은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미래 자산이다.
하지만 자산은 활용하는 사람의 몫이다.
더 이상 '좋은 땅이 있으니 기업은 알아서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업을 설득하고, 정부를 움직이며,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치열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번 일을 단순한 실패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전북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로 만들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