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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정승 유관은 바보였다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8.05.30 18:02 수정 2018.05.30 06:03

송성섭칼럼-정승 유관은 바보였다
 
↑↑ 성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부안서림신문 
굴곡진 세상에서 빈부의 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 세상에서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아픈틀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공평하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것은 허망한 바램이며 망상에 지나지 못한 것인가. 권력을 거머쥔 자나 기업가 앞에서 비열한 아부를 하고 한푼도 구걸한 적 없건만 그들에게 기가 죽고 주눅이 들어 발 밑에서 기고 있는것이 우리 사는 세상이다. 옛말에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했던가. 못난 놈 잡아 오라면 돈없는 가난한자를 잡아 온다는 푼수로, 탁류만 흐르는 세상은 썩고 병들고 말았다.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 주고 기업이 성장하도록 도와 준 자가 누구인가.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하며 기고만장하는 꼴은 참으로 가관이며 쓴 웃음만 나올 뿐이다. 선거철이 다가 왔다. 숭어가 뛰니 망둥어도 뛰고 꼴뚜기 멸치까지 뛰는 세상이다. 다행히 한자리 하게되면 목에 힘을 주고 사람을 내려다보며, 칼자루를 쥔양 위임받은 권력을 자기 것인 양 착각하는 꼴이나, 한 표를 애걸 할때 모습과는 천지차이 행태를 보이고 있는 인사들을 볼때면 차마 할 말을 잃고 만다. 모진 광풍 속에도 풀잎은 쓰러져 다시 일어서고 민초의 생명력은 질기기만 하다. 시퍼렇게 날 선 낫을 들고 반역을 꿈꾸는 날을 헤아리게 하지 말라. 위임 받은 권력은 필요한 곳이 있고 보살펴야 할 곳이 있다. 아직도 뿌리깊은 마피아 같은 폐해가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 가제는 게 편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끼리끼리 그들만의 잔치를 베풀고 있다. 우리 사는 세상이 언제쯤 깨끗하고 청렴한 세상이 될지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다. 이제는 청백리나 청렴이라는 말은 사전에서나 볼 수 있고 고어나 사어가 되어 버린지 오래이지만 꼭 나물 먹고 물만 마시며 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청백리는 바라지도 않지만 부정과 비리를 멀리하는 공직자 상을 고대해 보며 옛 선인의 삶을 한번 돌아보자. 고 이규태가 쓴 선비의 의식 구조 속에 청빈성향을 살펴보자. 신설동과 보문동 경계즈음에 우산각 골이라고 하고 또는 비우당골이라 일컫는 옛 지명이 있었다 한다. 그 지명의 유래는 고려 말 20여년간 입사했고, 조선조의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등 4대에 35년간이나 입사했던 정승 유관이 살았던 마을이다. 어느 장맛비 내리는 날 유 정승은 과거에 급제했을 때 하사받은 우산을 받쳐 들고 비를 피하다 집에 도착해 방안으로 들어서며 “우산 없는 집에서는 이 장마철을 어떻게 견디어 내는가?”라고 물으니 유 정승 부인은 “우산이 없는 집에서는 다른 마련이 다 되어 있답니다”라고 했다는 유 정승의 대화가 연유가 되어 우산각 골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한다. 재상의 봉록이면 궁색한 살림을 면하고 살 수 있으련만, 그의 봉록은 집안 자제들이 지물값, 다리놓는 공공사업에 시주, 무료 숙박소인 원의 희사로 다 없애고 청빈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머리를 숙이게 하는 이 청빈 성향은 선비의 도덕적 정신과 무관하지 않으며 오늘의 고위 공직자들이 되돌아 보아야할 이야기다. ​청청한 솔바람 같은 옛 선인들이 삶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 시대는 영혼까지 타락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99%를 가진 자들이 1%를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100% 채우려는 세상이다. 탐욕의 검고 더러운 마음을 말강물이 나오도록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또 돌리고 싶은 심정이다. 권력도 금력도 영달의 순간도 인생사에서 한순간에 지나는 것이고, 저세상 갈때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 분수를 알고 분수껏 살아야한다. 넘치는것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했으니 모자람에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무소유를 말한 법정 스님은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 즉 청빈은 절제된 아름다움이며 삶의 미덕이라 말씀 하였다. 오늘밤은 봄비가 소근 거리듯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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