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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조덕연칼럼-이단과 사이비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24.09.12 18:20 수정 2024.09.12 19:42

 
↑↑ 조 덕 연 서림신문 논설위원
ⓒ 부안서림신문 
종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다.

사이비는 발음을 들어보면 영어인듯하나 순수한 한자어다. 사이비(似而非) 진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다른 가짜를 의미한다. 시도 때도없이 발생하는 사이비는 비교적 기독교 종파에서 파생된 사이비가 많은 편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그럴듯한 믿음을 주는 종파로 출발한다. 신자가 따르고 존경받다 보니 교주는 자만을 넘어 오만으로 흐르고 마침내는 스스로 신이 되고 그러나 결말은 그를 따르는 개인과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며 끝을 본다. 성을 착취하고 돈을 착복하고 결과를 죽음으로 내모는 순서를 밟아왔다.

발생하는 장소도 어느 특정 지역이 아닌 세계 곳곳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1978년도에 남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짐 존스의 인민사원사건 그 종말은 918명이 집단 자살로 막을 내렸다.

1995년 일본 도쿄 지하철 사린 독가스 살포 사건으로 막을내린 옴 진리교 사건. 같은시기 충청남도에서 시작된 정명석 기독교 선교회 그리고 1982년 경기도 이천에서 시작된 아가동산 사이비종교 교주 김기순이 교회를 설립 폭행과 살인, 노동과 성 착취를 일삼았던 사이비의 만행,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사건은 오대양 자살 사건을 불러일으킨 교주 박순자가 저지른 사이비다.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구원파의 결과물은 1987829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오대양 공장안에서 교주 박순자를 비롯한 32명의 종업원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끔찍하게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수사결과 구원파 유병언의 욕심에 의한 결과물이었으며 그의 욕심이 세월호 참사까지 이어졌음이 확인된 바 있다.

문명은 발달하는데 왜?

사이비는 사라지지 않을까? 과학이 발달하고 물질문명이 풍부해지면 그만큼 만족하며 살아가야 하건만 그렇지 못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지 않나 싶다. 개인마다 가지고 싶은 욕구, 불확실성에 대한 의구심, 외롭고 힘들다는 정서적 불안에서 위안이 필요하고 생활의 여유를 갖다보니 시간이 많아졌고 시간의 여유가 자기 삶을 갈망하고 종교적 보편성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우리나라의 현실적여건인 종교가 없는 사람이 절반이 넘고(2021년통계, 무종교인 60%)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민족이기에 사이비의 유혹에 많이 노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단은 정통이론에서 벗어나거나 어긋나는 교리나 상식을 의미한다.

유일신앙의 최초 이단자는 예수였다.

선민사상을 강조하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빌미삼아 없는자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율법과는 관계없이 있는 자 중심의 관습에 따라갈 수 없는 어부들은 항상 따돌림의 대상이었을 때 서로 사랑하자며 그들을 감싸고 함께해주는 사람이 갈릴리 사람 예수였다.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위기를 느낀 유대교인들은 로마인들의 힘을 빌어 예수를 십자가형으로 처단하기에 이른다. 그후 3세기에 이르는 많은 시간을 고통과 죽음을 참고 견디어 지금은 세계인구의 절반이 넘는 종교로 우뚝 서게되었다.

1784년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다.

프랑스와 스페인 선교사가 중국에 들러 선교했고 그들의 저서 천주실의칠극을 우리가 가져와 천주학이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성리학이 정통이었기에 천주학은 이단으로 따돌림당했고 정치세력의 이용물이 되어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고 수많은 가정이 몰락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종교를 가지는 이유는 나와 나를 중심으로하는 공동체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다. 신앙은 신 중심이 아니라 내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신앙은 그리스도를 위하고 붓다를 위함이 아니라 나를 위함이다. 나에게 평화가 깃들면 가까운 이웃또한 함께 웃는다. 끼리끼리 모이는 모임에 내 이웃도 끼워주고 함께하는 모든이가 화목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남의 종교도 존중하면서 함께하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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