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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줄과 끈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8.04.25 17:26 수정 2018.04.25 05:25

송성섭칼럼-줄과 끈
 
↑↑ 성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줄과 끈은 우리네 인간사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줄과 끈의 사전적 의미는 비슷하지만 쓰임새에 따라 어미가 다르다. 어머니 뱃속에서 탯줄로 이어지는 줄은 목숨줄을 놓을 때까지 인간은 줄의 한평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어린 날 시장통 한구석에 자리한 서커스단의 외줄타기 소녀의 묘기를 보았을 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곡예였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인간사의 곡예일 줄은 미처 몰랐다. 사람이 태어남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것이 세상사이니 인연의 줄로 어느 사람은 금수저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흙수저로 태어남을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니 운명을 한탄한들 무엇하리요. 우리네 속담에 ‘끈 떨어졌다’는 말은 뒷배가 없는 처량한 신세로 밥줄이 떨어졌다는 의미이며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란 의지 할데가 없는 고단한 처지를 말한다. 또한 끈으로 매듭진 부부의 연도 있으니 줄과 끈은 우리네 인생사에서 불가분의 관계인 셈이다. 얼마 있지 않으면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선거철이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줄에 안달하며 줄을 잘서고, 줄을 잘타고, 줄을 잘 잡으려 혈안이 되고 그 줄을 잘 잡아야 출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같은 숙맥이이야 애초 줄서기나 줄타기에는 재주가 없으니 출세와 명예는 거리가 멀어 팍팍한 삶을 살아갈 뿐이다. 하기야 동아줄을 잡아야지 썩은 새끼줄을 잡는다면 패가망신하는 지름길이 될수도 있다. 지방정부는 지역민의 호흡을 가장 가까이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자리이다. 힘께나 쓰고 출세와 명예의 길로 여기며 직업으로 생각하는 ‘장’이나 ‘의원’이 있다면 지역주민의 불행이며 수치다. 일찍이 다산 선생은 ‘치(治)란 다스리는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이다’고 말씀하셨다. 줄서기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기회주의자가 많은 법이다. 그래서 한자리 하고 보면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탐욕에 침을 흘리며 줄을 서서 줄타기의 묘수에 제주를 넘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은 썩어 가고 우리네 삶은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것이다. 세상은 중병이 들어 천치에 신음소리가 가득하다. 우리가 사는 병든 세상을 고칠 ‘화타’같은 의인은 없으니 한줄기 빛을 쫓듯 옛 현인을 생각한다. 멱라수에 몸을 던진 중국 초나라 때 삼대 대부 ‘굴원’은 유랑 길에서 만난 어부와 나눈 ‘어부사’ 한 대목이 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니 홀로 맑으며, 세상 사람이 취하였으나 나홀로 깨어 있다’ 이 소리를 들은 고기잡이 노인이 답 한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 세상은 탁류가 범벅이 되고 한탄해도 물이 흐르듯 흘러만 간다. 시류에 편승하고 세상을 체념하며 살기에는 아직은 고개를 드는 마음의 소리가 있고, 세상을 인내하며 살기에는 불평등과 부조리가 넘쳐나고 있다. 줄과 끈을 버릴 수 없는것은 인간의 속성이라기보다는 사람은 어느 줄이나 끈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줄을 서고 줄을 잡은 사람은 수단과 방법으로 얄팍한 셈을 하고, 탐욕의 폐해에서 멀어져야 하지만 줄과 끈을 잡은 소수자들은 오만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비열한 갑은 논리고 벽을 쌓으니 세상을 분노케 하고 슬프게 한다. 어차피 줄과 끈으로 이어진 세상이라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며 이끌어 주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 본다. 야(夜)삼경에 소쩍새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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