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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늦깎이 인생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8.02.28 16:39 수정 2018.02.28 04:40

송성섭칼럼-늦깎이 인생
 
↑↑ 송성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사람은 태어나서 유아기와 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중년기와 노년기를 살고 있다. 공자께서는 나이 서른 살이면 입신을 하고, 마흔 살이면 불혹의 나이라 미혹하지 않고, 쉰 살이면 지천명의 나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종심의 나이가 넘어서야 겨우 철이 들고 세상 물정을 조금은 알 것 같으니 늦깎이도 한참을 뒤진 셈이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미숙아로 태어난 칠삭둥이 팔삭둥이도 있다. 지금 같으면 인큐베이터 신세를 저야 할 판이다. 하기야 근래 유명 탤런트 아기의 인큐베이터 사건이 회자된 적이 있다. 권력이 있는 자나 가진자들의 그릇된 소행은 사회적 폭력이다. 우리는 평등한 사회를 원하고 있지만 세상인심은 그들에게 알아서 기는 기가 막힌 세상이 되어버렸다. 어머니 뱃속에서 열달을 다 채우고 나온 사람도 제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세상에서 조선조 세조때 한명회라는 인물은 칠삭둥이로 알려졌다. 한날 개성 궁지기에 불과했지만 세조는 한나라 유방의 책사였던 장자방에 버금가는 인물로 평가하였고 성종 대까지 국구로 추앙받으며 권력의 중심에서 부귀와 영달을 한몸에 누린 과히 유쾌하지 못한 인물이다. 종심이 넘은 나이에 부러운 것도 없고 부귀와 영달을 탐할수도 탐해서 될일도 아니지만 칼날같은 세상을 바라보니 평등하고 균등한 세상은 요원한 것만 같다. 우리의 의식을 확 뒤집어 뜯어 고치지 않는 한 불균형 불평등은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의 나이 사십이 되면 제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다. 제 얼굴에 침을 뱉고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체면이라는 말이 있다. 옛 선비들은 체면 깎이는 일을 주검보다 두려워했다. 고 이규태씨가 쓴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보면 이러한 대목이 있다. 선비가 삼강의 도리를 범한 잘못이 있을 때 형벌로 부모의 함자가 적힌 종이를 태워 물과 마시는 벌칙이 있는데 체면을 중시한 한국인은 그 형벌이 주검보다 더한 고통이며 가문의 치욕이었던 것이다. 늘그막 나이에 바람이 있다면 TV화면에서 뻔뻔하고 철면피한 정치꾼들의 두꺼운 낯가죽을 보지 않는 것이다. 나이를 먹게 되니 좋은것도 싫은것도 미운것도 고운것도 별로 없지만 풀같은 백성을 우롱하는 거짓말, 금방 들통이 날 거짓말을 태연하게 지껄이는 그들의 뱃장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탐욕에 눈먼 그 이드르르한 얼굴이 삼년전 먹었던 김치가닥까지 넘어오는 구역질이 나기 때문이다. 검은 돈을 받고도 오리발을 내밀고 ‘대가성이 없었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고 밑에 사람이 한일’이라고 정해진 순서대로 앵무새처럼 되뇌는 그들의 찬란한 화술을 보라. 늦깎이 인생에 황혼에서 염려와 걱정은 우리 후세에게는 제발 평등한 세상이 열리기를 기원하고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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