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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꼰대의 자화상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7.10.01 16:05 수정 2017.10.01 03:57

송성섭칼럼-꼰대의 자화상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꼰대라는 말의 어원은 어디서 유래했는지 모르겠지만 꼰대는 주로 나이 먹은 남자의 또 다른 별칭이거나 청소년들이 자기 아버지를 지칭하는 말로, 말할 것 없이 꼰대는 비속어나 은어인 것이다. 나도 어느새 세월이 흘러 꼰대 중에도 팍 삭은 꼰대가 되고 말았다. 눈은 침침하고 기력은 쇠하였으며 얼굴은 금이가고 머리는 서리가 내리고 말았으니 나자신 생견한 얼굴이다. 생기있던 눈동자는 빛이 바래고 음성도 탁하여 맑지 못하다. 활기와 기백이 넘쳤던 걸음걸이는 허리가 구부정 한체 부자연스럽고 꼴보기 싫다. 단단한 음식물도 먹기가 쉽지 않으니 소화기관도 제 구실을 못한다. 마음만은 청춘이라 했던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나이와 세월을 부정하고 싶어도 어쩔수 없는 꼰대가 되고 말았다. 할 일도 없이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허무한 세월이 가면 꼰대의 마지막 길은 어디인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만 참으로 허망하고 허무한 한세상 세월이다. 하루가 시작되면 무더위 쉼터인 노인정을 찾아 날마다 출근아닌 출근을 한다. 또래의 꼰대들이 모여 더위를 이기지 못한체 산송장처럼 누워있거나 허튼 잡담이나 화투놀이로 소일을 하고 꼰대끼리 점심도 때운다. 늙으면 서글프지 않은 세월이 어디 있으랴. 꼰대는 서럽고 허무하고 염려와 걱정도 많으니 쓸데없는 잔소리도 많다. 우탁의 ‘백발가’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한손엔 막대 잡고 한손엔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하니 백발이 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도다’ 노인문제를 연구한 어느 학자는 ‘노인은 생활상의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이다’하였다. 젊어 한때는 열정과 용기로 삶의 파고를 해쳐 나갔다. 잔인한 세월은 흘러 제 육신도 가누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홀로 앉아 석양의 노을을 바라볼때는 서글픔이 밀물처럼 밀리어 온다. 흐르는 세월속에 꼰대가 되어버린 지금 더위와 추위에도 맥을 못춘다. 젊은 날에는 건강한 육체를 뽐내며 바닷가에서 활개도 처보았고 눈보라 치는 날에는 목로주점에 앉아 낭만을 즐기기도 하였다. 초록으로 싱그러웠던 날 고뇌와 번뇌로 밤을 지새우며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때도 있었다. 지금은 아스라이 멀어진 날 아름다웠던 지난날의 추억만이 가슴 한 구석에 남아 녹슨 심장에 한줄기 따스한 피가 감돌고 있을 뿐이다. 그저 한조각 추억을 쪼아 먹는 꼰대가 되고 말았다. 산중호걸도 늙어 이가 빠지면 토끼도 깔보는 세상인심인데 그 누가 꼰대의 위엄에 눈하나 깜짝하리요. 이제 다시 못올 생애의 한 자락에서 내 삶에 맺힌 옹이가 있다면 그 옹이조차 풀어버리고 세상의 소리에도 무심하며 마음속 일렁이는 파도를 잠재우고 달관한 마음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는 꼰대이고 싶다. 오늘은 저무는 하늘가 노을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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