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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조덕연칼럼-아쉬운 이별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7.03.15 21:54 수정 2017.03.15 09:58

조덕연칼럼-아쉬운 이별
 
↑↑ 조 덕 연 서림신문 논설위원
ⓒ 디지털 부안일보 
정초 늦은 오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지금 전주로 조문가는 중이니 함께 갈 준비하고 나오라 한다. 초등학교 동창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다. 달리는 차속에서 가버린 친구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같이 아쉬운 이야기다. 사실 초등학교 동창모임은 어른이 된 후 생활의 여유가 났을 때 서로 찾아 모임이 이루어진다. 우리도 나이 40이 다 된 어느 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것이 공동체를 이루어 30년이 넘는 시간을 서로를 나누며 살아오게 된 모임이다. 오늘 세상을 떠났다는 그 친구를 서로가 차안에서 회상해 본다. 나와는 등하교길이 같은 친구였으나 어린 나이에 학생수가 많아 기억하기조차 어렵지만 더듬어보면 까만 고무신에 책보 옆에 낀 청순한 학생이었던 것 같다. 동창회를 통해 만나고 또 행사하고 함께 여행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종교도 같고 또 살아가는 방식이 남을 배려하는 편이라서 우리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친구였다. 사람의 인상은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밖으로 표출된다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 통념이다. 그래서 그는 인생이 항상 밝고 온화한 것으로 봐 그 친구의 삶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우리는 언제나 그와 함께하고 싶은 친구중 하나였다. 그러나 함께 이야기하며 들어보면 그의 인생이 그가 밖으로 표출한 만큼 정이있고 복을 누리며 산 인생은 아닌 듯싶다. 나이 많은 사람과 함께하며 폭행에 시달렸고 그래도 내색하지 않아 친구 한 두명 외엔 그의 불행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어려운 생활에 건강이 악화되어 심한 안구건조증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기에 가까운 친구와 함께 걸을 때에는 그 친구의 손을 잡고 그 친구에 의지하며 눈을 감고 걸었다 한다. 빈소에 들려 조문을 하고 로비에 앉아 친구들과 슬픔의 이야기를 나눈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지금 오는 중이고 가까운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두운 새벽 미사를 마치고 일행 세명과 함께오다 회전로타리에서 사고를 당했다” 한다. 그의 가장 친했던 친구는 울먹이며 “눈이 안좋아 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원통해 한다. 장례식 장내는 세군데로 나뉘어 연도하며 가는 망자를 위로하고있고 그의 딸과 아들 며느리는 갑자기 당한 슬픔에 가끔은 실신하곤 했다. 황혼의 인생을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이 70이면 사실은 황혼이다. 눈뜨고 인사를 나누는 지금 감사함으로, 웃음으로, 그리고 기쁨과 미소로, 하루를 시작하고 언젠가 나에게 찾아오는 노을을 받아들일 줄 아는 인생이었으면 한다. 100세 시대에 사는 우리는 항상 망각하는 것이 있다. 나는 지금 한창이라는 착각이다. 그 착각과 모름이 인생을 즐겁게 할지는 몰라도 소리없이 다가오는 해 저문 노을의 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비참함이 비겁일수도 있다. 적어도 여유로운 삶이라면 우리는 노을을 즐길 줄 알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동안은 온갖 돌부리에 채이고 옷깃을 적시는 여정이었을지라도 저문 노을을 웃으면서 보낼 수 있음은 노을과 함께 미소짓는 여유가 필요하다. 오늘 아쉽게 친구를 묻고 이별을 고한 우리는 설렁탕 국물에 밥말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다. 그는 분명 귀천했으리라. 천상병 시인처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손에 손을 잡고…….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그는 말하고 있을 듯싶다. 손짓하며 떠나는 그의 미소짓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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