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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세월이 몇 굽이를 돌았다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5.04.25 23:28 수정 2015.04.25 11:26

송성섭칼럼-세월이 몇 굽이를 돌았다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꽃피고 새우는 춘 삼월이 왔건만 풀리지 않는 경제처럼 섬 마을은 겨울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다. 오포세대라는(연애, 결혼, 출산, 집장만, 인간관계 포기) 신조어가 생겨나도 정치권은 헛발질만 하고 있다. 부정과 비리가 만연하고 일상화된 세상에서 살기 팍팍한 서민들은 죽지 못해 사는 세상이다. 정치권은 제 밥그릇에 연연하고 선거에는 죽기 살기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세상사 보기 싫고 듣기 싫어 귀를 막고 눈을 감아 보지만 만만한 것이 풀같은 백성인지라 들볶아 대는 세상이 구역질이 난다. ‘절이 보기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지만 떠날수도 없는 운명이 안타까울 뿐이다. 세상의 미련과 기대를 버린지 오래이지만 돌아가는 꼴이 울화가 치미는 순간을 참을수가 없다. 이제 낙이 있다면 노을이 지는 바닷가에 앉아 지난날을 회상하며 추억하는 것이다. 버릇처럼 황혼에 물든 강심을 바라보며 젊은 날 삶의 무게도, 산산한 삶도 영욕의 날도, 못 잊어 애태우던 사랑도, 모두 내려놓고 추억으로 번지는 마음을 반추하고 있다. 찾아 갈 사람도 찾아 올 사람도 없는 고독한 섬 생활이 마냥 편안하기만 하다. 아내가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고동을 따고 들에 돋은 봄나물로 가난한 내 밥상이 푸짐하고 한잔 술을 곁들이면 세상 무엇이 부러우냐. TV도 라디오도 잊은지 오래이다. 좋은 옷차림도 기름진 음식도 그다지 필요치 않고 허기를 달래줄 끼니가 그저 호강이다. 달이 뜨면 달이 좋아 바닷가 달빛이 부서지는 바다를 보고 잠 못 이루는 밤에는 책을 벗삼아 지루하면 잠을 청한다. 비가 내리면 처연한 마음으로 지난날을 회상하며 그래도 그리운 날 다시 못 올 날을 아쉬워한다. 화장한 날에는 물때를 보아 지인의 이끌림으로 어옹이된다. 노자의 “부족해도 만족할 줄 알면 족하다”는 말씀을 가슴에 담아 두며 가난한 자에게는 약간의 만족도 행복한 것이다. 가령 생선 한 마리가 내 상에 오를때, 한점의 회로 안주를 삼을때 가진 자가 느끼지 못하는 행복이 거기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은 가지려는 욕망과 집착속에서 불행이 싹트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공수래공수거라 한다. 나는 빈손이 좋다. 이 나잇살에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을 가져 무얼하며 젊은 날에 이루지 못한 것들에 연연해 봐야 노추에 불과 한것이다. 내 마음속에는 무인도가 하나 있다. 달빛이 곱고 바람이 흐르고 파도가 넘실대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무인도, 나는 그 무인도를 닮고 닮아가려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이무기가 울고 파도가 모질게 할퀴어 가고, 화창한 날에는 물새가 다정한, 아직 덜 깬 꿈도 넘실대는 찾아올 아무도 없는 그래도 교교한 달빛이 아름답기만 한 무인도. 어릴적 나는 인어 아가씨를 그리며 달빛이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바닷가를 즐겨 걷곤 하였다. 황혼이 된 이 나이에도 달이 밝은 밤이면 어김없이 바닷가에 나가 인어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영원히 내 마음속에 자리한 노스탤지어가 될것이다. 세월은 무심히 흘렀다. 옛날 그 옛날, 울며 잡던 여인을 뿌리치고 섬 놈은 ‘바다가 좋다’고 도망치듯 그녀를 떠나온 때도 있었다. 그때는 자학이라 생각 했으나 나는 바다가 좋다. 봄이면 해무가 피어오르는 신기루 같은 바다가 좋고, 여름이면 청산을 넘나드는 갈매기 무리지는 바다가 좋다. 가을이면 옥빛 바다가 마음을 설레이게 하고 겨울이면 터지는 분노처럼 포효하는 바다가 좋으니 나는 천상 섬 놈 체질인가 보다. 이제 나이들어 귀거래는 아니지만 반념쯤은 고향 섬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고향의 바다는 옛적의 바다가 아니고 인심도 많이 각박해졌다. 고기떼는 씨가 마르고 정갈하고 아름답던 바닷가는 쓰레기가 넘쳐 난다. 나는 변해버린 고행을 바라보며 당나라 시인 하지장의 글을 생각한다. ⌜젊어서 고향 떠나 늙어서야 돌아오니 시골 사투리 변함없으되 머리털만 희였구나. 아이들은 서로 바라보나 알아보지 못하고 웃으며 어데서 온 나그네냐고 묻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몇 굽이를 돌았으니 세상도 변하고 고향도 변했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노을진 황혼의 바닷가에 앉아 오래도록 상념에 잠긴다. 마지막 타는 불꽃처럼 노을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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