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눈내리는 밤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5.02.27 21:48 수정 2015.02.27 09:46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한해가 가고 새해가 와도 어떤 감회도 감흥도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종심을 넘은 나이는 보는것 들리는 모든 것에도 그저 무심한 마음이 되나 봅니다. 다만 깊은 겨울밤 눈이 오면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촛불을 밝힙니다. 적막만이 깔려있는 세상에 사각사각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가끔 처마에서 철썩하고 떨어지는 한 무더기의 눈덩이는 내 가슴에도 겨울이 철썩하고 내려앉고 있습니다. 창가에는 눈송이가 내려 물방울이 되고, 어는 산골 초가집 들창에는 평온한 등잔불 빛이 행보처럼 새어나오고 검둥이가 컹컹 짖어대는 밤은 그렇게 강물처럼 깊어 가겠지요. 적막과 고요속에 눈송이가 쌓여 온 세상이 은백의 설원이 되면 잠시 추하고 보기싫은 것을 감추어 두면 환희처럼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 것이냐. 회상하는 젊은 날, 눈길을 걸으며 사랑을 속삭였던 여인도 아스라한 기억속에 희미한 그림자입니다. 포장마차의 어묵 한그릇에 만족했던 그 밤도 하염없이 눈은 내렸습니다. 그 사람의 볼은 복숭아 빛으로 물들고 눈망울은 샛별처럼 빛날 때 우리는 행복했지요. 지금은 그사람도 세월의 무게에 금이 간 얼굴에 할머니가 되고 우리들 사랑도 저물었습니다. 늙어 사랑이나 여성의 구원을 말하는 것은 망령된 나이라 하지만 나에게도 초록빛 청춘의 날은 있었네. 세월은 가고 황혼의 언덕에는 한조각 구름을 날리는 스산한 바람만 불고 있습니다. 세상은 모두 잠들고 나 혼자 잠못이루는 밤 가로등 불빛 사이로 부나비떼처럼 눈송이가 날리고 나는 ‘에밀리 브론티어’의 슬픈 ‘추억’을 읊조립니다. 차거운 땅속 흰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데 아득히 떠나 차디찬 무덤속에 쓸쓸히 누운 그대여 오직 하나뿐인 내 사랑이여! 모든 것 끊어 놓는 시간의 물결 우리들의 사이를 끊었다 해도 내 그대 사랑하기를 잊었으리오. 차거운 땅속 거칠은 섣달이 열다섯 번 이 갈색의 언덕에서 녹아 봄이 되었건만 추억하는 정신의 신실함이여. 변화와 고통의 긴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서늘하게 가슴에 다가오는 ‘에밀리 브론티어’시가 마음을 시리게 합니다. 인생은 연극이라 하고 여행이라고도 합니다. 연극이라면 각본 없는 연극이고 여행이라면 다시 돌아갈 곳이 없는 인생의 끝이 다를 뿐입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헛되이 살아왔음을 한탄합니다. 돌이킬수 없는 인생을 후회합니다. 젊은날 가슴을 태우던 열정과 사랑도 재가 되고 허무한 인생의 길이 덧없음을 이제 알만한 나이가 되니 나의 가슴속에는 한줄기 슬픔만 가득합니다. 한해의 끝자락에 서면 세월이 공포로 다가와 마음을 심란하게 들쑤시고 있습니다. 버리고 못보고 가는 길이 여한이 없으리오만 평담한 마음이 되고자 내 자신을 다독이곤 합니다. 모든 사람이 해로동혈하기를 바라지만 세상사 운명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의 갈림길에서 다른 길은 아픔이 뼈를 저리게 하는 고통이 아니겠습니까. 인생이란 신산한 삶의 고통과 운명의 굴레에서 ‘씨지프’의 괴로움에 평생을 허덕이는 고달픈 여정이 아닐까요. 즐거움과 만족 영화와 영달도 한순간에 지나지 못하는 것, 허무한 세월속에 아무도 대신할수 없는 길을 가야합니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겨울의 한가운데에서도 알몸으로 버티는 초목도 푸르른 날 소생의 찬란한 봄을 기다리는데 인생의 봄은 다시 오지 않으니 꿈은 허공에 흩어지고 나그네처럼 외로운 길만 남았습니다. 조락의 계절이 지나가면 죽은것도 다시 살아나고 죽어 다시 못오는 것들과 함께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달과 해를 맞이할 것입니다. 겨울이 가고 온 산야가 유록빛으로 물들면 나는 봄날 ‘루쉰’의 행복론 처럼 늙은 몸을 양지바른 곳에서 졸음에 겨운 한나절의 평안을 보낼 것입니다. 삼경이 지나도록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철없는 감상에 가슴이 시리기만 합니다.


저작권자 부안서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