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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경로당과 노인정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5.01.23 20:14 수정 2015.01.23 08:12

송성섭칼럼-경로당과 노인정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춘추전국시대 공·맹의 유교사상으로 이어지는 인,의,예,지를 바탕으로 한 경로효친의 이념은 유가의 기본틀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핵가족으로 분열된 가족관계와 각박한 세상 물정속에 경로효친 사상은 갈수록 퇴색되어 말로만 이어지는 허구가 되었습니다. 나는 어느 교의에 귀의한 적도 없지만 유교의 질서는 무너진지가 오래입니다. 불효의 극치를 이루는 일로 늙고 병든 부모를 버리는 일도 있고 노인요양원이라는 현대판 고려장이 보편화 되었습니다. 하기야 날로 고단하고 힘든 세상에서 병든 부모를 집에 모셔두고 간병하며 돌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때로는 부모 자신이 자청해서 요양원으로 가는 일도 허다하게 되었습니다. 노인 문제를 연구하는 어느 학자는 “생활상의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이다”정의하고 있습니다. 임어당은 인간생활의 기쁨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그중에 맛있는 음식을 먹은 기쁨은 기쁨중에 기쁨이다 하였으나 노인이 되면 소화기능이 저하되고 이가 부실하여 음식물을 잘 씹지 못하며 혀의 점막이 퇴화해 미각이 둔해지고 내장기능이 떨어지니 음식맛을 어찌 제대로 음미 할 수가 있겠으며 소화가 잘되겠습니까. 노인정에는 ‘아이고’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일어서면서도 ‘아이고’ 앉을때도 ‘아이고’하는 신체적 부실로 서글픈 인생의 여정에서 육신의 고달픈 상처만 남았습니다. 주검의 그림자를 머리에 이고 밤새 안녕을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의며 힘든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푸르렀던 청춘은 가고 한뉘의 뉘누리 속에 황막한 세상을 살면서 자식들 뒷바라지에 허리 굽은 노인을 보라. 효의 파자를 해석하면 아들이 아비를 없고 있는 형상이지만 과연 이 세상에서 아비를 어부바하는 아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회한은 노인들이나 앓는 병아닌 병이지만 가슴속에 깊은 한으로 남으면 중병이 됩니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헤어지는 연습이 필요할때가 되었으니 이제 서서히 나의 그림자를 지울때가 되었습니다. 생자필멸이라 하지만 미련과 여한이 없을수가 있겠습니까. 영광과 영달의 길을 걷던 사람도 늙음과 주검앞에서 한탄의 소리가 깊어가는 것입니다. 유대의 솔로몬 왕도 주검에 이르러 모든 것이 “헛되다”하였으며, 한 무제도 인생무상을 노래하며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픔도 많아지는 법, 얼핏 젊음이 가고 늙은 몸을 어찌하랴’하고 탄식 하였습니다. 모든 인간은 순서는 다르지만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막을수 없는 시간속에 나는 견마지치의 헛된 세월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제 출근 아닌 출입할데는 노인정 밖에 없습니다. 또래의 황혼 인생이 모여서 세월을 한탄하며 육신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일로 하루를 소일하고 있습니다. 무료한 노년의 즐거움이 무엇이겠습니까. 다만 노욕으로 경계할 일은 돈을 탐하지 말아야 하며 인간의 감정인 칠정, 즉 기쁨과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과 증오와 욕심을 자제하고 평담한 마음으로 남은 생을 살고자 나는 원하고 있습니다. 겨울의 눈보라라 세차게 몰아칩니다. 창밖에 분분히 내리는 눈송이를 보며 나는 청춘의 회상에 젖어 봅니다. 흐르는 세월속에 시들부들 늙어버린 육신은 생명의 진액이 소멸되어가고 제 몸을 태우던 촛불처럼 마지막 심지의 불꽃이 가물거림을 느끼고 있습니다. 꽃도 지고 열매도 떨어지면 알몸으로 버티는 겨울의 초목은 소생의 봄을 준비하고 있으나 나는 회생할수 없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정처없이 방황하다 생의 종착역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대 허무한 폐허의 땅 어느 뒤안에 고달픈 영혼을 묻을지니 자취도 없이 흩어지고 말리라. 겨울 칼바람 속에 천지에 눈발이 가득합니다. 오늘밤은 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상념만 쌓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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