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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아름다웠던 날.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4.09.04 12:17 수정 2014.09.04 12:15

송성섭칼럼-아름다웠던 날. 아름다운지도 몰랐다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연중행사처럼 책 몇권을 싸들고 고향 위도의 누옥에서 지낸지도 두달여가 지났습니다. 무더위도 한풀 꺾여 입추가 지난밤은 서늘한 바람이 불고 풀벌레 울음소리가 한적한 밤을 외롭게 합니다. 잡다한 세상사를 잊고 섬의 한밤이 깊어 갈수록 바닷가의 별빛은 쏟아질듯 아릅답기만 합니다. 세월은 그렇게 가고 계절은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찾아올 사람도 기다릴 사람도 없지만 연락선의 뱃고동 소리가 울리면 터무니없는 기다림의 설레임은 웬일일까요. 일상이 무미하여 외롭고 허전한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그리움이 남아 있나 봅니다. 그리움은 헤어짐에서 오는 애틋한 마음 입니다. 종심의 늙은 나이에 그리움은 마음을 한층 애잔하게 하고 쓸쓸하게 합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애끓는 그리움에 가슴앓이를 하지 않았으리……. 이제는 세월이 흐르고 문득 어느 때 생각이 날때면 늙은이의 망령이라고 마음을 다독이곤 합니다. 종심의 나이에 모든일에 무심하리라 마음먹고 무심하게 살자고 생각 했는데 어느 날 그리움은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엊그제는 비오는 해변의 선술집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피서객 하나 없는 스산한 백사장은 파도만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꿈은 저 파도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구부정한 허리와 야윈 어깨위에 빗물이 흐르고 아름답던 젊은 날을 허송해 버린채 소태같이 쓰리운 고독과 자괴감만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울적한 마음에 과음을 한 탓인지 이삼일을 앓아누웠습니다. 지병도 있고 노쇠한 몸이 과도한 주량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버릇 때문에 후회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술이란 알맞게 마시면 약이 되고 과음하면 독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나이가 되도록 절재하지 못하는 것이 한심하기만 합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나이 값을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만큼 살아온 나이에 절재 하지 못하고 주책을 부리며 철이 없음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설익은 인간이 아니겠습니까. 하기야 절재 하지 못하고 욕심이 많은 것으로 치면 높으신 양반네와 힘깨나 있다는 사람들은 권자에서 물러날 생각도 없고, 먹고 먹어도 탈도 없으니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해먹는 사람들에 비해 사소한 욕심을 내는 우리같은 민초들이 무슨 큰 죄가 되리까. 세상사가 납덩이를 삼킨것처럼 답답한데 권좌에 앉은 자들이야 외눈 하나 깜짝 않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큰소리치니 풀같은 백성이 주눅이 들어서 항변 한번 해보지 못하는 불쌍한 처지가 아니겠습니까. 풀같은 백성이야 감히 오금이 저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나도 불신과 혐오와 실망만을 가슴에 묻어두고 돌이 되었습니다. 못본체 못들은체 타는 속을 맥없이 줄 담배나 태우며 술로 속을 달래니 심성은 사나워 지지만 가소로운 세상 하늘이 돈짝만 하더이다. 세상이 술을 먹게 한다고 누군가 말하였지요. 그 통곡처럼 절규하는 소리가 절절히 뼛속까지 파고듭니다. 물신의 시대에 가진것 없고 힘없는 사람은 죽은 듯 살아야 하는 시대가 슬프기만 합니다. 용기도 패기도 없는 늙은이가 무력하고 초라한 넋두리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제는 황혼가에서 회한만 삽질하는 내가 미워집니다. 비내리는 바닷가에서 무능하고 초라한 자신이 부끄럽고 한스러워 가슴에 불덩이를 삭이려 쏟아지는 비에 흠뻑 젖었더니 감기까지 겹쳐 몸을 추수리기가 괴롭습니다. 인생은 언젠가는 가야하고 가야 할 길이 얼마 남지 안했는데 이제야 한탄 한을 무슨 의미가 있으리오. 아름다웠던 젊은 날 그 날을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지나온 것이 참으로 견디기 어려워집니다. 나에게 주어진 남은 날들이라도 무심과 무욕의 마음을 지닌 체 늘그막의 평안을 기구하며 세상의 모든것을 아름답게 보고자 다짐해 봅니다. 물새 한마리 외롭게 울고 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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