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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남항진의 찻집에서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4.03.17 11:28 수정 2014.03.17 11:28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장설. 여 닷새를 내리 퍼붓는 폭설을 과히 상상을 초월하는 눈 폭탄으로 눈 천지 백색지대를 만들었습니다. 몇 일전 강릉사는 딸내미의 성화에 저와 아내는 모처럼 나들이를 하였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밖출입도 여의치 못해 방안퉁시 꼴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눈발이 깨끔한 틈을 타서 딸 내외와 해변의 찻집을 찾았습니다. 끝간데 모를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에는 회색빛 무거운 하늘이 내려앉았고, 또 다시 분분히 내리는 눈발속에 파도가 해변을 핥고 있었습니다. 천지에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을 보면서 나는 무언가 모를 시름과 깊은 생각에 묻혀 있습니다. 지난날들의 그리움이 마음의 창을 열고 물밀 듯 밀려오면 추억의 그림자 속에서 허탈한 현실을 맛보게 됩니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날들은 마지막까지 고이 간직하고픈 마음의 장식입니다. 철없는 한때는 눈 오는 날이 마냥 즐겁기만 하였고 젊은 어느 날은 낭만에 젖기도 하였습니다. 손발이 꽁꽁, 시려운 줄도 모르고 눈 장난이 좋았던 어린 날. 언뜻 보이는 한 조각 푸르른 하늘. 티 없이 맑은 우리들 웃음소리는 쨍하고 연못가의 얼음판이 깨지듯 명쾌하게 하늘가를 날아올라 한 마리 새가 되었습니다. 낡은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따스한 그대 손을 꼬옥 잡고 거닐던 깊은 밤 차가운 눈발은 차라리 청량하였고, 포장마차의 멋과 멋은 낭만이었습니다. 잊혀져 가는 기억속에 전설같은 희미한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아픔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따스한 찻잔이 다 식는 줄도 모르고 희미한 그림자 같은 추억을 반추하는 하잘것없는 늙은이가 되어버린 세월이 또 다시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하루하루가 소중했던 날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금쪽같은 시간들을 허망하게 보내버리고 인생의 출구에 서서 나는 비로소 참회 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날 그 청춘의 날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흘러가 버릴 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바닷가에 내리는 눈이 밀려오는 파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듯. 푸르른 날은 그렇게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해변의 송림에는 내리는 눈송이와 나뭇가지에 무겁게 내려앉았던 눈이 소슬한 바다 바람에 눈보라와 눈꽃 소나기를 만들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얼마나 더 볼 수 있는 날이 있겠습니까. 인생의 차표 한 장을 들고 세상에 태어났으니 머지않은 종점에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고뇌와 비련의 날도, 외로움과 괴로웠던 날도, 오만과 편견의 날도, 미움과 행복했던 날도, 사랑했던 모든 것도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잊고 가야하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때입니다. 한세상 살다 보니 이 세상에 내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집착과 욕망도 차마 떨치고 가지못할 사랑하는 모든 것도, 가려지는 모든것도 돌이켜보면 하잘것없는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과 같았습니다. 누구나 인생은 시한부 삶과 같기에 가야 할 길을 아니 갈 수도 없습니다. 미련을 남기지말고 거칠것 없이 훌훌 털어버린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대 떠날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남대천 강물은 어름장 밑에서도 세월가듯 쉬임없이 흐르고 입춘이 지났지만 경포대의 찬바람은 칼끝처럼 매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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