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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조덕연칼럼-'칠극'을 논하다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3.04.11 23:04 수정 2013.04.11 11:04

 
↑↑ 조 덕 연 서림신문 논설위원
ⓒ 디지털 부안일보 
겨울의 시작이 동지라면 한달이 지나지 않은터라 추위는 살을 예의는 듯 차갑다. 나무에는 눈꽃이 피고 산길은 아이젠이 없이는 미끄러운 빙판길을 한발도 움직이기 어려운 산길을 간다. 눈이 녹는 사이로 진달래 철쭉의 앙상한 나무끝을 생명력이 통통하게 밀고 나온다. 나무가 싹을 트려고 움직이는 모습은 생명력의 신비를 불러준다. 추위에 아랑곳 하지않고 일찍부터 새생명을 재촉하는 나무, 그러나 그보다 먼저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있었던 것은 사람이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계획하는 부지런함이 사람에게 먼저 있었다.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보고, 또는 널따란 대자연을 바라보며, 아니면 컴퓨터가 있는 책상에서 우리는 묵은 한해를 반성하며 다음해의 희망을 다진다. 그 바램은 풍요와 명예 그리고 평화다. 매년 반복해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것은 밝은 세상을 염원하는 다짐이었것만 사회는 그리 밝게 흘러가지만은 않고 있으니 아름다운 세상을 원한다면 게으르지 않으려는 노력이 항상 존재 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악을 행하고 있는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윤회설을 만들었다한다. 사람이 착하게 살면 다음에오는 내세에 좋게 태어나지만 악하게 살면 짐승으로 태어난다는 사상이다. 인도에서 유래한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등이 교의로 삼고있는 사상이나, 종교간 갈등으로 있고 없음의 존재가 대립되고 있으나 종교에 관계없이 세상을 착하게 살라는 교훈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에 종교가 전해온 과정을 살펴보면 불교는 삼국시대에 들여와 고려조에는 국교가되어 왕실의 스승이 승려였고 유교는 조선조에 흥하여 반상을 막론하고 공,맹사상은 백성이 살아가는데 일상으로 자리하였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때는 조선조 후기의 일이며 그 형성 과정이 다른 나라와는 사뭇 달랐음을 알수있다. 어느 나라든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에 의하여 종교가 뿌리를 내렸지만 우리나라는 양반가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읽혀서 중국의 신부를 모셔온것이 전해온 과정이다. 당시의 양반들은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사회였다. 글을 읽고 풍류를 즐기며 살면 되는 삶이었다. 많은 재산을 소유하여 소작농과 머슴만 부리면 부귀와 영화는 자동 누려지는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관청의 탄압을 받고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그리스도를 믿었던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학문 탐구에서 비롯되었고 그 결정적 역할을 한것이 '천주실의(이탈리아 출신 신부가 중국에서 선교 활동중 1603년 저술한책)'와 '칠극(七克)'이라는 두권의 책이었다. 두 신부가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한문으로 쓴책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출판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당시의 상황에서 빌려 보고 베낀다음 돌려보는 형식으로 양반가의 안방에서 널리 읽혀져 천주학의 저변을 넓혀 간것이다. 칠극은 스웨덴 출신 빤또하 신부가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중 1614년 북경에서 쓴 책으로 그리스도교와 유학의 초기 접촉에서 형성된 수양론(修養論)이다. 칠극에서 죄의 근본에는 일곱가지 실마리가 있다고한다. 첫째가 교만이고, 둘째는 질투, 셋째는 인색함, 넷째는 분노, 다섯째 먹고 마시는데 빠지는것, 여섯째 여색을 탐하는것, 일곱째는 착한일에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라 했다. 이를 이겨내는 일곱가지 덕은 겸양으로 교만을 누르고, 사랑하여 질투를 가라 앉히고, 재물을 나누어 인색함을 이겨내고, 인내로 분노를 참고, 집착을 없앰으로써 먹고 마시는 데 빠지지않고, 욕망을 끊어서 여색에 빠짐을 이겨내고, 하느님을 부지런히 섬겨 착한일을 함에 게으름을 이겨내야 한다했다. 칠극, 그 뜻을 요약하면 악된 구습을 버리고 선을 베풀라 함이고 얻고자함은 영원한 즐거움과 복이며, 버리고자 함은 괴로움과 재앙이라 했다. 400년 전에 지어 200년 전 우리의 조상을 감회 시켰던 이 책이 지금도 감동적이니 가히 오늘을 사는 우리를 수양하는데 흠이 없는 책이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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