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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가을 날 친구를 떠나보내며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2.11.24 16:06 수정 2012.11.24 04:06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꽃잎처럼 상큼한 향기로운 가을 날 아침 나는 그의 부음을 듣게 되었다. 가슴 한쪽이 무너지는 슬픔이 애잔한 그리움에 한동안 넋을 잃고 말았다. 그와 나의 우정은 오십 여년을 헤아린다. 패기만만하고 젊음이 터질 듯 부풀은 날에 우리는 만나 격이 없이 친해 졌고 변함없는 우정을 쌓아 올렸다. 소식이 끊긴지 이삼년. 가을 어느 날 그는 죽음으로 내 앞에 불쑥 다가온 것이다. 우리가 소원해 진 것도 나의 건강이나 그의 건강이 좋지 낳은 탓도 있었지만 그가 고향을 떠나고 일 년에 한두 차례 만나던 것이 그나마 그는 경상도로 이주를 하였고 나는 전라도 시골에 파묻혀 사니 만남의 날도 소식도 뜸하게 되었다. 그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커다란 이유는 이십여 년 전 서해훼리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보내고 마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다가 결국 고향을 버리고 말았다. 켜켜이 쌓이는 슬픔을 뼈가 저리는 외로움을 그는 술로 달래는 날들이 늘어 갔고 건강을 극도로 해치고 말았다. 어찌 잊을 수가 있었으랴. 그는 다정다감한 성격에 남달리 부인을 사랑 하였다. 신의와 의리에 강했고 활달하고 진실한 멋있는 사내 이었다. 그의 강인했던 성격도 부인을 보내고 나서는 맥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생각하면 우리의 젊은 날은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 날 이였던가. 여름날의 바닷가 별이 쏟아지는 밤 물새 우는 강변에서. 가을날 흐드러지게 핀 들국화가 서럽도록 아름답던 달 밝은 밤. 밀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멋과 낭만에 젖어 인생을 젊은 날의 푸르른 꿈을. 사랑을 얘기하며 청춘을 즐겼다. 유주무효(有酒無肴)인들 엇떴으랴. 젊은 우리의 속은 단단하고 지칠 줄 모르는 힘이 넘쳤고 육신은 철강처럼 단단하였다. 그는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짝 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된 것이다. 그의 마음을 누구랴 위로 할 수 있었으며 무엇으로 위안이 되었으리. 새로 맞이한 부인이 있었지만 마음은 늘 허허했고 그는 늘 슬픔에 젖어 있었으며 늘 허물어져 있었다. 그의 상처는 아픔은 죽음만이 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야 하는 그 아픔을 어떤 말로 위안 받아야하는가. 해로동혈(偕老同穴)하는 것이 부부간의 간절한 바람이거늘 한쪽을 잃는다는 의미는 전부를 저버리는 것이며 인간을 황폐하게 만드는 최대의 비극인 것이다. 불러도 오지 못할 사람 잊으려도 잊지 못할 사람. 그 아픔과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감히 입에 담지도 못할 일이다. 그는 찢어진 아픔을 한을 안고 그렇게 살다가 이젠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갔다. 그는 죽기 전 “나를 네 에미와 합장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죽어서라도 사랑하는 아내 곁에 묻히고 싶었던 그의 심정을 어찌 필설로 다 할 수 있으랴. 이제는 아픔도 헤어짐도 없는 저 세상,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잠든 그 영전에 술 한 잔을 올린다. 친구여 편안히 잠들 라. 죽은 자는 죽어 없고 산자는 산자대로 고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먼저 가고 늦게 간다는 차이뿐 우리도 필연코 갈 길이 아니던가. 살아가면서 문득 그대와 함께 했던 즐거운 기억들이 추억으로 되살아 날 때. 오늘처럼 바람 소슬히 낙엽이 뒹굴 때, 서산의 노을이 슬프도록 고울 때, 나는 가만히 그대 이름을 부르리라. 친구여… 우리가 만난 것도 한 세상 인연이었고 즐거웠던 지난날도 꿈길인 것 같구나. 그대와 나의 이승의 인연은 이제 끝이 났다. 우리가 윤회의 어느 길목에서 다시 만나는 날 달빛고운 들국 핀 언덕에 앉아 일 배 일 배 또 일 배 취해 볼 날이 있으려는가. 그대 고이 영면하라. 나의 날도 저물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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