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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세월의 소리를 듣는다.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2.09.29 14:44 수정 2012.09.29 02:44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지난 며칠 억수로 비가 내리더니 요즘들어 말끔히 갠 날이다. 창문을 여니 망월산이 손에 잡힐듯 깨끗하고 가깝다. 늦은 오후 나는 언제나 창호를 열고 푸르름이 짙은 산을 보며 상념에 빠져든다. 망월산이 눈앞에 있고 봉수산이 지척이다. 부엉이가 대낮인데도 봉수산에서 울고 우리는 적막하다. 내집은 동내에서 약간 떨어진 위쪽에 자리하고 있고 나의 작은 방은 지나는 사람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다. 아내도 이 시간이면 마실을 나가고 찾아올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는 나는 세상의 모든 것 자유 ․ 상념 ․ 외로움 ․ 그리움…에 빠져든다. 조금은 쓸쓸한 것도 외로운 것도 같은, 그러나 고독하지 않고 나만의 공간에서 생각이 깊어만 간다. 오늘은 지인과 친구에게서 전화를 몆통 받았다. 잊지않고 안부를 묻는 그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세상을 감사하며 살지 못한 지난날이 돌아보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늘그막에야 깨달음은 늦고 잘못된 삶을 생의 저녁에 후회와 회한으로 밤을 지새우고 한탄한들 다시오지 않을 지나가 버린 시간들이다. 보이는 모든 것 산도 하늘도 바다도 한 이파리 꽃잎도 풀잎도 생명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 것들이며, 들리는 모든 것 바람소리 새소리 파도소리도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가. 참소리를 듣지 못하고 거짓이 판을 치는 귀가 고픈 세상에서 자연의 숨소리와 내음은 또 얼마나 찬란한 것인가. 전하는 말중에 세상에 세가지의 거짓말이 있다. 늙은이가 죽어야 한다는 말, 처녀가 시집가지 않겠다는 말,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변하면서 그 세가지 거짓말도 시효가 만료되어 옛날 얘기가 되었다. 노후 준비가 없는 늙은이는 죽기를 바라고, 알파우먼의 처녀들은 시집가기를 거부한다. 장사꾼도 경기불황에서 밑지고 창고정리를 해야한다. 우리사회에 회자되는 세가지의 새로운 거짓말이 있다면 정치꾼들의 허튼 약속과 돈먹고 오리발 내미는 것이 첫째이고, 정경유착에 배임과 횡령을 모르쇠하는 기업인이 둘째이며, 관변 교수들의 학자연하면서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곡학아세가 세 번째 거짓말이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데 이 나라 정치판쯤이야 오물락 주물락 할수 있는 것이 ‘쩐’아니겠는가. ‘쩐’없는 놈이야 죽고사는 것이 내 알바 아닌 세상에서 정치는 무엇이며 진실과 덕은 무엇인가. 나라경영을 한다는 사모를 쓴자들의 행태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춥고 배고픈 뼈저린 가난이 세상에서 제일 서럽다 하나, 올 여름처럼 지긋지긋한 폭염속에서 한끼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방황하는 찌든 가난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냉방이 잘된 회전의자에 폼잡고 앉아 생각은 지역감정과 해묵은 갈등을 부추겨 표나 챙기고 사기와 거짓말로 국민을 우롱하는 각본을 짜 맞추며 거룩한 말씀으로 땅에 놓기도 아까운 말씀으로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서 허기진 백성을 위해서 시퍼렇게 장담한 것이 나라를 이꼴로 만든 것이다. 말이야 누가 못하랴. 말잔치의 정치판 속에서 우리의 희망은 믿음은 있는 것인가. 죽는놈 벽차기이고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이나 흘기는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들의 자조와 절규는 맨날 조롱거리로 치부되었다. 개처럼 헐떡이며 죽어라 하고 평생을 벌어 집한채 장만하는 것이 꿈이라면 그것이 세상사는 사람의 꿈이고 희망이 되겠는가. 세상이 그러려니 하다가도 문득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울분을 삭일길이 없으니 횡격막 밑의 위장만 쓰리게 하고 밤마다 반역을 꿈꾸게 한다. 귀가 고픈 세상에서 열대야도 지나고 가을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가 아름답다. 때가되면 계절도 세상사도 끝맺음이 있게 마련인가. 지난여름의 지독한 더위에 기력이 소진했음인지 요즈음 지인들의 부음을 자주 듣게 된다. 천년도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 문밖이 바로 황천길이라는데 다시한번 삶을 뒤돌아 보게하는 숙연함과 마지막 길은 누구나 똑같이 정해져 있는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사랑도 돈도 명예도 고희가 가까워오니 시들해지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원한도 회한도 여한도 없는 그저 마음의 평온함과 감정의 기복을 물결을 다스릴때가 되었다. 날마다 세월의 소리가 들린다. 젊은 날에는 세월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허송하며 방황하였다. 예금의 잔고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저문 생의 길목에서 세월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새로운 깨달음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나는 은자의 흉내를 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람이 새는 벽, 곰팡이가 퀴퀴한 주옥에서 한철을 보내는 것은 가난한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최선의 방책이기 때문이다. 집착하고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 욕심을 부리는 것은 늘그막의 노욕이며 꼴불견이다. 밤이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읽고 소동파의 시집을 보며 굴원의 초사에 심취한다. 세끼의 먹을거리가 있고, 늙은 육신을 편안히 뉘일 한 칸의 집이 있고, 바람과 별과 가을의 소리가 가득하니 더 바랄 무엇이 필요하랴. 가진 것 까지 버릴 때가 되었으며 가슴속 한 점의 티끌도 말끔히 쓸어 내야 한다. 추석이 낼 모레다. 망월 산에 보름달 오르고 봉수산에 밤새가 울면 일배주로 흥을 돋우고 마음을 다독이며 아름다운 한편의 시를 쓰고 싶다. 오지 못할 지난날의 추억을 반추하며 세월의 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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