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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꽃비 내리는 날 꽃 보라 속에서 꽃노을로 지고자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2.07.25 10:06 수정 2012.07.25 10:06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아내가 이른 봄 꽃 판을 만들어 모종한 꽃씨가 어느 정도 자라 옮겨 심고 올처럼 극심한 가뭄에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아기를 키우는 엄마처럼 지성으로 정성을 다한 보람인지 저마다의 꽃들이 봉우리를 맺고 피고 지고 있다. 봉선화는 그다지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우리에게는 “울 밑에선 봉선화”라는 홍난파 작곡의 노래가 있어 친밀하고, 노래 말 또한 민족 수난사의 의미가 있기에 가까이 두고 보는 꽃이지만 아내의 속셈은 따로 있는 듯하다. 이제는 꽃띠 같은 청춘도 가고 곤때 가신 얼굴에 잔주름이 연륜을 말해주 듯 무심히 지나가버린 세월 속에 봉선화로 빨갛게 물들인 손톱을 보며 소녀처럼 좋아 하는 여심은 나이가 들어도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마음 인가보다. 꽃은 품위가 지극 하고 아름다우며 즐거움까지 주기에 모든 사람이 아끼고 사랑하며 좋아한다. 세상에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아름다움이 으뜸인 꽃에 비유하는 우리말이 많은 것도 그에 연유 한다. 꽃띠 꽃 보라. 꽃구름, 꽃노을, 꽃 글, 꽃잠, 꽃비, 꽃불, 꽃다지, 꽃물, 꽃국, 꽃소주 등 얼마나 고운 언어들인가. 중국 당나라 현종은 연인 양귀비를 두고 해어화라 일렀다던가. 오죽했으면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 하였으리. 그 무렵 장안에서는 모란을 키우지 않은 집이 없었고 주작대의 동쪽 자운사의 모란이 천하일품이었다고 전해온다. 모란은 꽃 중의 꽃으로 여겼으며 부귀와 다복을 뜻하기도 한다. 국화와 매화는 옛 선비들이 특히 좋아 하여 사군자의 하나로 꼽았으며 시인 묵객의 글과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서정주 시인은 「국화 옆에서」에서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읊었다. 다산 정양용 선생은 국화는 여러 꽃 가운데 특히 네 가지 빼어난 점이 있다며 “첫째 늦게 핀다는 것이 한가지 이고, 오래도록 견딘다는 것이 한가지 이며, 향기로운 것이 한가지이고, 예쁘지만 요염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선 성종 때 명신 신용개는 오늘 밤 손님 아홉 분이 찾아온다며 술상을 준비케 하고 달이 떠 창호에 그윽한 달빛이 어리자 자기가 키우든 국화 아홉 분(盆 )을 앞에 놓고 권커니 잣커니 대작하여 통음 하였다 하니 그 멋스러움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소동파도 「송풍정 아래에 매화가 만발하여」란 시에서 “춘풍령 고개 위의 회남촌 마을 그 옛날 매화가 넋을 잃게 했었지. 송풍정 가시밭에 외로운 두 그루가 이침 햇살 흠뻑 받아 백옥처럼 빛난다.”…….중략……. 그는 매화에 넋을 잃고 백옥에 비견 하였다. 매화가 필 무렵에는 옛 선비들은 매화 연(宴)을 열고 시회회로 멋과 풍류를 즐겼다고 전한다. 정조 때 꽃에 미친 김덕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손님이 와도 말 한마디 없이 종일 꽃밭에서 눈을 떼지 않고 꽃에 미친 벽(癖)이었다.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을 그는 「백화보」에 담았다고 전한다. 이처럼 꽃을 좋아하고 꽃을 사랑하고 꽃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 꽃은 그 품위가 고귀하고 자태 또한 지극히 아름다움은 더 일러 무엇하리요. 들에 피는 한 떨기 들꽃도 청초하고 어여쁠진대 정성으로 키운 꽃은 더욱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화무십일홍 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고운 꽃도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하였으니 인생도 일장춘몽이요 저녁 바람에 스치우는 한조각 구름인 것을... 흔들리듯 스치는 바람결에도 꽃잎이 지듯 세월도 인생도 덧없이 가는 것이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시들어 저가는 꽃 이파리를 보면 더 없이 흉하고 추하기만 하다. 저가는 꽃잎을 보면 가슴에 물결처럼 밀려오는 애잔한 슬픔이 나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처연한 마음이 저리고 아프다. 꽃다운 청춘이 지나간 날, 꽃띠 같은 푸르른 날을 헛되이 보내버리고 시든 꽃잎 되어 인생의 황혼 가에 남루하게 서 있는 나 자신을 본다. 늙은이의 심술로 메마르고 삭막하여 황량한 감성의 탓으로 나는 이제 꽃을 심지 않으리라. 설혹 꽃을 심을 바에는 앵도과의 매화나 벚나무, 복사꽃을 심으리라. 매창의 「이화우」도 좋으리.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임”.…….중략…….은 이화가 꽃비로 지는 날 임과 이별하는 애절한 노래이다. 나는 꽃비로 지고 함박눈처럼 분분히 쏟아지는 꽃 보라가 좋기 때문이다. 춘설위에 몸통으로 떨어지는 동백꽃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냐. 그 붉디붉은 몸이 정열을 토하고 꽃 몸을 던져 버리는 한 점 미련 없음이 난 좋은 것이다. 앵도과의 꽃과 동백꽃은 추하지도 흉하지도 않게 황홀히 피었다 질 때도 찬란하게 아름다운 것을. 나는 인생도 꽃비 내리는 날 꽃 보라 속에서 꽃노을로 미련 없이 지고 싶은 작은 나의 소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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