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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삼여’를 즐기고 싶다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2.05.22 21:40 수정 2012.05.22 09:40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봄 같지 않은 봄이 오락가락 하더니 벌써 5월의 신록이 아름답습니다. 뒷산 등성이는 갈매 빛으로 물들고 담쟁이도 따라서 돌담을 휘감아 돕니다. 엊그제 전주의 큰 병원을 다녀와서 부랴부랴 누가 기다리나 한 것처럼 위도의 누옥을 찾았습니다. 전주에 간 김에 한나절이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몇 권의 책을 샀습니다. 새 책을 사기에는 가난한 주머니가 너무 가벼웠습니다. 몇 권의 책이 나를 이렇게 즐겁게 하고 마음이 풍족하여 행복합니다. 짧은 봄밤이지만 책을 읽는 즐거움은 어떤 것과도 비길 데 없습니다. 옛 선비들은 독서하기 좋은 시기를 ‘삼여(三餘)’에 두었다고 합니다. “밤은 하루의 나머지, 겨울은 일 년의 나머지, 비오는 날은 갠 날의 나머지”라하여 책 보기에 열정을 다했다 합니다. 나도 그들의 ‘삼여’를 즐기고 싶습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는 공자의 말씀이 있습니다. 병원에 갈 때는 마음이 심난 하였습니다. 구강암을 앓고 난 뒤에는 신경이 입안에 쏠려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상 징후가 있는 듯 자꾸 신경을 자극합니다. 내 마음 같아서야 구강암이 재발하고 다른 곳에 전위 되었다 해도 그냥 사는 날까지 살다 죽으리라 생각하지만 자식들의 성화와 그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별스러운 생각을 다해봅니다. 다행이 별탈이 없다고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왔습니다. 오늘 밤은 안개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뜨락까지 밀물이 밀리고 물새 소리 처량합니다. 생각은 밀물처럼 가슴까지 차오릅니다. 무언가 잃어버린 건만 같아 허전한…. 갈증같이…. 생각이 깊을수록 생각나는…. 잠깐이라도 시름을 지우고 싶은…. 담배를 피우고 싶습니다. 의사 선생은 딱히 담배를 끊으라고 말은 안했지만 아내의 성화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암에는 담배가 가장 안 좋고 그 고통을 겪었으면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속이 없다”고 구박(?)이 심합니다. 말끝에 “자식들 보기에 미안하지도 않느냐”고 할 때는 나에 가장 여린 곳을 덧치는 말입니다. 지난번 입원 했을 때 입원비 거의를 자식들이 부담해야 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마음이 내키지 않고 짐이 되는 신세가 마음을 착잡하게 하였습니다. 몸이 허약하고 마음이 심약해진 탓인지 벌써 인생 고희를 바라보면서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는 처지가 못내 언짢고 가련 했습니다. 학창시절에 생 멋과 치기로 담배를 배웠습니다. 백해무익 인줄 알면서도 50여년을 피워 왔습니다. 담배는 습관성과 중독성이 강하여 한번 피우기 시작하면 여간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끊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애연가는 그 나름대로 변이 있지요. 마음이 울적 할 때나.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망각의 심연에서 하나의 기억을 건저 올릴 때. 나 같은 사람이 서투른 문장을 엮어 나갈 때나 슬픔과 노여움을 잠들게 하는 망우 초라합니다. 가로등도 뿌옇게 안개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며 빈 파이프만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안개비가 내리는 밤에도 소쩍새는 울고 있습니다. 모두가 잠든 야삼경 한 마리 새소리에도 마음이 울적하고 잠 못 들어 하는 건 나이 탓이겠지요. 지나온 생을 자꾸 뒤돌아보게 됩니다. 가버린 세월 쌓인 회한을 털어 버리려 해도 생각마다 밟히고 가슴속에 들끓는 사념은 어찌 합니까. 세월이 세월이가도 그리움의 나이테는 더해만 가고 헤어져 못 잊는 세월이 그 많은 날이 얼마 입니까. 사람의 일생이란 참으로 허무 합니다. 백년을 사는 것도 아닌 인생이 욕망과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동거렸던 한 생애가 부질없는 것이었습니다. 밤이 깊어 소쩍새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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