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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나는 종이 되리라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1.05.07 21:47 수정 2011.05.07 10:02

 
↑↑ 송 성 섭 부안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얼마 전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 아내는 이침부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를 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저 웃기만 하였다. 정오가 가까올 무렵 우리 집에는 침대와 장롱, 화장대의 가구들이 들어 왔다. 놀래며 의아해 하는 나의 얼굴을 보고도 아내는 모르는 척 인부들과 함께 열심히 가구만 정리하고 있었다. 한식경이 지나서 세간살이가 제 자리를 찾고서야 아내는 들뜬 얼굴에 홍조까지 띄우며 “여보 이제야 우리 신혼살림 하는 것 같죠”하며 쓸고 닦으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알고 있다. 세간을 들여 놓을 때까지 입을 다물고 행여 타박이나 듣지 않을까 그동안 걱정 했을 아내의 속마음을……. 나는 아내가 멋쩍어 할까봐 “그래 참 좋구먼” 대꾸를 해주고 베란다에 나가 먼 하늘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가 자꾸만 흐려졌다. 결혼 생활 사십 여 년 동안 아내에게 변변한 화장대 하나 마련 해주지 못한 처지 이었으니 장롱이며 침대는 더 말할 나위 없었다. 한쪽 구석에 밥상을 놓고 손거울을 보며 화장하는 아내를 보기가 민망했고, 헌 장롱을 얻어 와서 좋아하는 아내를 면박을 주었다. 더욱 우리 내외에게는 침대 같은 가구는 호사품이었다. 아홉 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식구들 건사하느라 없는 살림 꾸려 나가랴 동분서주 고생에 찌든 아내였다. 젊어서 시작한 내 사업은 실패를 거듭 하였고 재복 없는 운수소관 이었던지 거덜이 나고 말았다. 나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유랑하는 나그네처럼 타관을 떠돌며 술병 속에 인생을 묻고 말았다. 삼남매의 뒷바라지도 아내의 가녀린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이었다. 아내는 그 무거운 짐을 불평불만 한번 내색하지 않고 감내 하고 감수 하였다. 이제 아내의 얼굴에 곤때도 가시고 세월 속에 쇠하고 삭아가는 아내를 바라보며 몸 고생 마음고생만 시킨 것이 내 탓이려니 생각 할 때 가슴을 저리게 한다. 세상 물정이라는 것이 생활이 빈궁하면 형제들도 고개를 돌리는 세태이다. 남의 비위를 맞추는 재주도 없고 게으르고 주변머리도 없었다. 개한테 주어도 먹지 않을 자존을 가지고 살아 왔기에 아내를 더욱 힘들게 하였다. 세월의 흐름 속에 열정의 의지도 신산한 삶도 고개를 넘어 인생의 황혼이 되었다. 모자람에도 만족할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고 황혼녘 마지막 타는 놀처럼 우리들 삶이 아름답기를 소원해 본다. 가진 것이 없으면 어떠랴. 늙어가는 우리 양주가 쉴 집 한 칸이 있고 세끼 양식이 있으면 무엇이 부러우랴. 내 방에는 한 시렁의 책이 있고 마당가에는 푸성귀가 소담하게 자란다. 점심에는 상추쌈에 배가 부르고 도란도란 얘기 하다 밤이 이슥하면 잠이 든다. 인생무상을 누가 모르랴. 지나고 나면 한 바탕 꿈길인 것을……. 우리 만일 윤희의 길목에서 다시 만나면 아내에게 지웠던 전생의 무거운 짐을 내가 모두 지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내의 종이 되어 나는 기꺼이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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