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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밤에 읽는 편지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1.02.17 15:42 수정 2011.02.17 03:45

 
↑↑ 송 성 섭 부안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종일 잿빛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더니 밤이되어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올겨울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몸도 마음도 얼어붙게 하고 구멍 뚫린 가슴속에 찬바람이 숭숭 지나갑니다. 고단한 삶을 더욱 힘들게 하는 계절입니다. 한 겨울 긴 밤을 불면으로 지새우며 누가 나를 부르는 듯 새벽 두시경이면 언재나 잠이 깨입니다. 세장 같은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 가로등 불빛사이로 쏟아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생각이 깊어집니다. 세월이 쉼 없이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사랑했던 시절도 헤어져 가슴 아팠던 시절도, 목마름으로 그립고 기다림에 떨리던 마음도 세월의 두께에 덮이며 무디고 둔해져 갑니다. 그러나 가슴속 불씨 하나 꺼지지 않고 아직도 그리움이 남아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아픈 사연을 지니고 고통과 절망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해도 진실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인생은 참으로 불행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왕위를 미련 없이 버리고 명예와 권력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심슨 여사와 진실한 사랑을 위해서 원저 공으로 살아온 영국 왕 에드워드 8세가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극작 로미오와 줄리엣도,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통해하며 사랑 하는 사람의 뒤를 따라 꽃다운 청춘을 주검으로 마감했습니다. 그들의 사랑에 이 세상 모든 연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대 소설 춘향전도 있습니다. 임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절개를 지키는 윤리 의식은 높이 살만하지만, 아무리 조숙하다해도 열 칠 팔세의 어린 나이에 만나자 마자 육욕의 쾌락에 빠져드는 그들의 행위가 낯 뜨거울 지경입니다. 소설의 허구성을 알고 있지만 춘향전의 한 대목을 들을 때는 아름다운 사랑을 모독 하는 것 같아 비위가 상합니다. 쾌락만을 탐하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어느 작가는 “정욕이 없고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정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육욕의 쾌락에 빠지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사랑의 정의나 평가를 내릴 수는 없습니다. 깊은 밤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였을 뿐입니다. 그대와 나는 어느 해 봄날 기차역 대합실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신열로 떨려오던 그때의 해후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이십여 년이 지나 만난 우리는 옛날 그대로 이었습니다. 남의 지어미 지아비로 살아 왔지만 모든 것을 잊은 척 살아온 날들 이였지만 엊그제 만난 사람처럼 가슴은 여전히 따스했고 무심한 세월도 잊은 채 그 옛날 그 눈빛으로 우리는 담담한 미소로 반기었습니다. 그대는 서둘러 기차를 타야 했고 나는 넋 나간 사람처럼 설렁한 대합실에서 돌아오기로 약속이나 한 것 같이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밀물처럼 쏟아지는 참담한 고독의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한해 한번이라도 만나자던 그대와 나의 약속은 세월이 흐를수록 뜸해 지더니 오작교는 풍화에 퇴락해 건널 수 없는 다리가 되고 밤마다 그리움의 샘물을 두레박질하다가 세월이 켜켜이 쌓인 뒤안에서 갈망에 허덕이어야 했습니다. 거미가 은실을 뽑아 정교하게 망을 짜듯 나에게도 아름다웠던 날, 우리들의 사랑의 전설을 엮어 내고 있습니다. 추위에 떠는 할단 새의 망각처럼, 이 밤이 지나면 그대를 찾아 길을 떠나야지 떠나야지 하다가 미루고 미루고 맙니다. 신산한 삶에서 그대를 사랑했기에 세상은 아름다웠습니다. 나를 위해 기원하는 사람이 있기에 가슴이 따뜻했습니다. 폐허로 허물어진 세월도 그대가 있기에 꿈이 깊어 갑니다. 춥고 어두운 긴 겨울이 지나면 초록빛 너울을 쓰고 봄이 찾아오듯 늙어 빛바래 인 눈망울에도 사랑의 생기가 일렁이리라. 그대와 나는 서로 다른 생의 지평을 살아가고 있지만, 사랑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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