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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 잃어버린 가을날의 풍경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0.10.07 13:02 수정 2010.10.07 01:11

 
↑↑ 송 성 섭 서림신문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아무도 찾아올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는 섬 마을 나의 누옥에서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밤세워 풀벌레가 울고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바다에도 별빛이 흐릅니다. 할 일 없이 세월은 가고 가을은 그렇게 다가 왔습니다. 황혼녘 생의 길목에서 몇 번이나 가을을 맞이할지는 모릅니다. 세상살이 시름도 고달픔도 기쁨도 미움도 시들해 퇴색해버린 인생길에서 그리움은 아직도 남아 있나 봅니다. 사는 날이 괴롭고 욕망과 집착으로 허우적대는 날도 부질없는 망상이었습니다. 회한을 삽질하며 가을밤을 잠 못 이뤄 합니다. 밤마다 바닷물은 밀물이 되어 나의 뜨락에 머물고 시누댓잎이 제 몸을 비비며 서걱 댈 때면 망각의 저편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기억으로 잠자리를 뒤척입니다. 내가 살아온 길에서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일어버렸는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위해 살아 왔는지, 한 가지도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고 보잘 것 없는 늙은이의 그림자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며 세월이며 인생입니다. 지나가버린 흘러가버린 세월 속에 가을이 되면 나는 꿈을 꿉니다. 망각 속에 묻혀버린, 저 깊은 곳에 묻혀버린, 한 조각 꿈의 파편을 살며시 꺼내어 보석처럼 만져 봅니다. 돌을 던지면 쨍하고 깨질 것 같은 파아란 가을 하늘이었습니다. 어제 밤 할머니와 어머니가 밤세워 다듬이질하여 매만진 희다 못해 푸르스름한 옥양목 홀청이 눈부신 햇살아래 바래이고 있었습니다. 파아란 하늘이 있고 감이 빨갛게 익어가고 고추잠자리가 꽁무니를 들썩이는 도깨비가사는 마을은 행복했습니다. 흐르는 듯 떠가는 황포돛배에 떠도는 하이얀 갈매기가 지루하도록 한가로운 어느 가을날의 오후가 다시 보고 싶습니다. 짱아를 잡기위해 고무신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뜀박질 하던 방죽 모퉁이 그 아이가 꿈속에서 지금도 보입니다. 바다는 황금 물비늘로 일렁이고 달 밝은 언덕에 산국이 서럽도록 아름다워 그 자태가 너무도 고아 취하던 날도 있었습니다. 가슴에 차오르던 벅찬 꿈이 젊은 날의 고뇌가 차마 떨치지 못한 사랑이 소용돌이처럼 뒤흔들던 청춘의 날이 있었습니다. 한조각 구름 이었던가. 인생은 저녁노을에 비켜가는 덧없는 한조각 구름이었던가. 사내의 처진 어깨가 시리게 보입니다. 이제는 모두 잃어버린 가을날의 풍경입니다. 오래된 흑백 영사기처럼 끊겼다 이어지는 기억의 편린들이 이 가을을 처연하게 합니다. 젊은 날의 초록빛 사랑도 신열로 떨려오던 열정과 절망과 고뇌의 모든 것들이 불덩이로 타올랐던 날들도 오열의 날들도 낙엽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가을날. 차가운 바람에 구르던 낙엽도 우리들 마음은 스산하지 않고 포근한 따스함의 온기로 다가오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대와 나의 가슴에 아직도 그리움이 남아 있음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입니까. 그대를 사랑하였기에 나는 행복합니다. 무심한 세월은 흘러 나의 가을은 가고 말았습니다. 잠 없는 늙은이는 추억의 부스러기를 밤새 줍다가 아침이면 한 아름 버리고 맙니다. 한 세상 삶의 무게가 가난한 자의 몫이 되었습니다. 풍요로운 계절 이 가을날 빈약하고 처연한 삶의 채취는 메마른 마음의 가난 때문입니다. 생의 끝자락에 서서 아름다운 날 이 청명한 가을날 부질없는 탐욕의 때를 말끔히 씻을 때입니다. 한 세상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청청한 솔바람 그 솔바람 같이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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