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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섭/부안서림신문 주필 |
ⓒ 디지털 부안일보 |
우리는 우스갯말로 “먹기 위해서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하고 물을 때가 있다.
딱히 어느것이 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가난하고 배곺은 백성은 먹고 사는 것이 참으로 소중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였듯 우리 속담에까지 먹는 얘기가 많은걸 보면 지난날 굶주리고 허기진 백성들의 고난이 짐작이 같다. 우리네 밥상은 국이나 탕을 곁들여야 하는 식문화이다. 거칠고 깔깔한 꽁보리밥이나 잡곡밥은 국과 탕이 없으면 목구멍으로 넘기기에 고역이고 고구마나 감자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울때도 하다못해 찬물 한 대접이라도 있어야 했다.
풀떼기 죽이나 시래기 국물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던 처지에 식문화라고 하기에는 가난한 우리네 밥상은 참담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그 반대 촛불 시위가 전국을 뒤흔들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옛날에는 권력있는 양반 부유한 사람들이나 쇠고기를 먹었고 힘없는 풀같은 백성은 쇠고기 대신 개고기를 먹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일년에 두세번 명절때나 특별한 날에 돼지고기를 먹었던 어린날의 기억이 있다. 쇠고기는 꿈에서도 구경 못했던 시절이 있었으니 격세지감이 새롭다.
쇠고기는 국과 탕으로 조리한다. 곰탕이나 갈비탕, 우족탕, 도가니탕, 꼬리곰탕, 내장탕 등 탕종류가 다양하다. 하기야 아무리 무슨무슨 탕이 감칠맛이 나고 맛이 있다고 한들 요즈음 세상에 한탕만큼 구미가 당길 수가 있으랴. 소의 부산물인 곰탕이나 내장탕 등에는 우리의 슬픈 역사가 있다. 고려때의 백여년에 걸친 몽고족의 침입 조선조의 병자호란과 임진·정유왜란 등 크고 작은 변란은 침략자들이 소나 돼지같은 가축을 약탈하고 뼈나 내장을 버리고 가면 그것을 주어다가 주린 배를 채웠던 눈물겨운 수난이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가축의 내장 음식이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백성은 축생과 다름없는 고달픈 신세. 생각하면 그것은 치욕의 역사였으며 슬픈역사의 한 단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계약관념이 희박하고 감정외교에 치우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지만 영어권에 유학한 그 많은 유학파들이 있는데도 협의서 영문하나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데서야 말이 되는 소리이며 광우병 불안으로 걱정하는 국민의사를 무시한채 쇠고기 수입이 급하기는 무엇이 그렇게 서둘러 급했단 말인가. 국민과의 소통은 막힘과 단절의 정치가 되고 강부자 내각 고소영 참모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국민의 소리를 외면한채 독선으로 밀어붙인 이정권 출범부터 사단은 난 것이었다. 도덕성의 결여를 묻어둔채 경제를 살리겠다고 장담하는 큰소리에 반해버린 국민도 문제는 있다.
돈많이 모은것을 능력의 잣대로 평가하는 이 정권의 의식에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대와 희망은 좌절과 실망으로 신뢰는 불신으로 무참하게 무너지는 현실을 보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할 뿐이다.
제헌 60년이 지나도록 부정과 비리로 엊그제까지 콩밥을 먹던 사람이 버젓히 정치밥을 먹는 정치판이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럽기만 한 것이 우리의 정치사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것이며 올바른 정책도 신념도 없이 오락가락 갈팡질팡하는 대한민국호의 방향타는 어디인 것인가.
위기는 기회라는 그 신물나는 소리는 이제는 그만하라. 고유가 고물가 고기온까지 겹쳐 사람을 잡는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목놓아 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