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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값들 떨고 있네”

이석기 기자 입력 2026.10.28 12:25 수정 2026.10.29 10:15

이석기/부안서림신문 대표
이석기/부안서림신문 대표
지는 해가 아름답다 했던가.
우리 고장 변산의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그 어느 곳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서해의 너른 바다 위로 붉은 해가 서서히 기울고 하늘과 바다가 황금빛과 주홍빛으로 물드는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숙연하게 만든다.
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기 위해 해마다 가을이면 변산해수욕장에서 노을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변산해수욕장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자동차가 몰린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국에서 관광객이 찾아와 해변을 가득 메웠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공연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지역축제는 이제 지역을 넘어 전국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축제 첫날, 개막공연에 앞서 진행된 개막식은 관광객들의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내빈 소개와 의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관람석 맨 앞자리는 축제를 즐기러 온 관광객이 아니라 부안군의회 의원들과 부안군내 기관사회 단체장들이 차지했다. 그것도 모자라 자치단체장과 군의원 십여 명이 한꺼번에 무대에 올라 개막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 순간 관람석 뒤편에서 한마디가 들려왔다.
“꼴값들 떨고 있네”
예순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성 서너 명이 무대를 바라보며 내뱉은 말이었다. 표현은 거칠었지만, 그 장면이 외지 관광객들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국어사전에서 ‘꼴값’은 분수에 맞지 않거나 품위 없는 행동을 뜻한다. 수많은 관광객을 위해 마련한 축제의 개막식이 지역 정치인들의 얼굴을 알리는 자리처럼 비쳤다면,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아름다운 노을과 공연을 기대하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축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보여 주기는커녕, 지역 내빈들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데 더 많은 관심을 쏟은 셈이다. 거창한 실수나 예산 낭비가 아니더라도 의전 하나, 무대 배치 하나만으로 축제의 품격은 얼마든지 떨어질 수 있다.
쉽게 말해, ‘꼴값’을 한 것이다.
물론 지역을 대표하는 선출직 공직자들이 축제에 참석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지역을 찾은 손님들을 환영하고 축제의 성공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참석 여부가 아니라 자리와 태도다. 누구를 위해 마련된 행사인지, 누가 그 자리의 주인공이어야 하는지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개막 퍼포먼스에 지역 정치인들만 줄줄이 올라갈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 몇 사람을 초대했더라면 어땠을까. 축제위원장과 자치단체장, 군의회 의장이 관광객들과 함께 개막을 알리고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면, 그 자체로 훌륭한 장면이 되었을 것이다.
관광객들은 자신이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환대받는 손님이자 축제의 주인공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변산 노을축제 역시 한층 따뜻하고 세련된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축제의 품격은 내빈의 숫자나 소개 순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대에 올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축제의 주인공으로 대접받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우리 지역 행사장에서는 이러한 주객전도의 풍경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선거 때만 되면 주민의 ‘머슴’이 되겠다며 허리를 굽히던 사람들이 당선되고 나면 행사장에서 상전처럼 대접받으려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항변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의전은 주최 측에서 챙기는 것이지, 우리가 챙기는 것이냐”
행사장의 좌석 배치와 내빈 소개를 주최 측이 책임지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의전을 받는 사람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의전이 자신에게 주어질 때 적절한지 판단하고, 필요하다면 사양하거나 조정하는 것 역시 공직자의 몫이다.
의전은 권위를 과시하는 절차가 아니라 행사의 성격과 참석자의 역할을 고려한 예우다. 예우가 지나쳐 행사의 본래 목적을 가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예우가 아니다. 특히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행사에서 공직자가 자신의 자리를 앞세우는 순간, 예우는 권위의 과시로 변질된다.
얼마 전 열린 노인의 날 기념행사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다. 굽은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행사장을 찾은 팔순, 구순의 어르신들은 뒤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군의원들과 사회기관단체장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맨 앞자리에 앉아 내빈으로 소개받았다.
누가 누구를 섬겨야 하는 자리인가.
노인의 날은 평생을 일하고 가정을 꾸리며 지역사회를 일궈 온 어르신들의 헌신에 감사하고 존경을 표하는 날이다. 그렇다면 그날만큼은 어르신들이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야 마땅하다. 행사의 주인공을 먼저 모시고 젊은 공직자들은 뒤에서 그분들을 섬기는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노인의 날 행사에서 가장 귀한 의전은 이름을 불러 주는 일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앉을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축사 한마디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가 손을 잡고 불편한 곳은 없는지 살피는 일이다.
공직자의 품격은 가슴에 단 꽃이나 행사장에서 차지한 자리의 앞뒤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구를 먼저 배려하고 누구 앞에서 자신을 낮출 줄 아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선출직 공직자는 주민의 선택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주민 위에 군림하라고 주어진 자리가 아니라 주민을 대신해 일하라고 맡겨진 자리다. 선거 때 머슴을 자처했다면 당선된 뒤에도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주민이 마련한 행사장에서 앞서 대접받으려 하기보다 주민들이 편안하게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한발 물러서는 것이 도리다.
물론 공식 행사에는 그에 걸맞은 의전과 예우가 필요하다. 그러나 예우에도 때와 장소가 있다. 전국의 관광객을 위한 축제와 어르신을 모시는 기념행사는 목적부터 다르다. 누구를 중심에 두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주최 측과 참석자 모두에게 요구되는 상식이다.
행사의 격을 높이는 것은 사람을 많이 소개하는 기술이 아니라 불필요한 절차를 덜어 내는 지혜다. 공직자가 앞자리를 차지한다고 해서 행사가 빛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한발 물러설 때 주민과 관광객, 어르신들이 앞자리에 설 수 있고 행사는 본래의 목적에 가까워진다.
변산의 노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아름답다. 지역 유지에게만 더 붉게 물드는 것도 아니고 군의원에게 더 좋은 빛을 내어 주는 것도 아니다. 먼 길을 달려온 관광객에게도,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어르신에게도 똑같은 감동을 선사한다.
자연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데 사람은 어째서 스스로 자리를 나누고 대접의 순서를 정하려 드는가.
노을은 저물수록 아름답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자신의 이름과 자리를 드러내기보다 한발 물러서고, 자신에게 쏠린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줄 때 비로소 품격이 드러난다.
축제의 주인공은 내빈석에 앉은 사람들이 아니라 축제를 찾아온 사람들이다. 노인의 날의 주인공은 내빈으로 소개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어르신들이다. 이 단순한 사실만 제대로 지켜도 우리 지역의 행사장은 지금보다 훨씬 따뜻하고 품격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꼴값’이라는 말은 듣기에 거칠다. 그러나 그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까닭은 눈에 거슬리는 모습이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불편한 지적이라고 귀를 막을 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지역을 아끼는 마음과 달라지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날 변산해수욕장에서는 아름다운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노을에 감탄하며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개막식의 한 장면은 그 아름다운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씁쓸함을 남겼다.
노을은 제때 물러날 줄 알기에 아름답다. 사람도 때로는 무대에서 내려오고 앞자리에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주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한 공직자라면 더욱 그렇다.
부디 다음 축제에서는 내빈의 이름보다 관광객의 웃음소리가 먼저 들리기를 바란다. 노인의 날에는 공직자의 꽃보다 어르신들의 얼굴에 핀 웃음꽃이 먼저 보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날 개막식에서 들려왔던 그 한마디가 더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꼴값들 떨고 있네.”
이 말이 우리 지역 행사장에서 사라지는 날, 비로소 우리는 축제의 품격과 공직자의 자세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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