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화면 조포2마을(이장 오순철, 부녀회장 김영희)은 계화면에서 동북간 약 5㎞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 이장 오순철 씨와 부녀회장 김영희 씨를 주축으로 37세대 100여명의 주민들이 서로 돕고 챙겨가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행복한 마을이다.
조포2마을 남서쪽으로 창북리 염창산이 바라다보이고 서쪽으로는 계화산이 보이며 동진강 하류에 인접해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형성은 320여년 전 시산 허씨의 성을 가진 한 보부상이 동진강 상류를 따라가다 새모양을 한 포구를 발견, 그 형상이 참으로 기이하여 정착하면서 새 조(鳥)자 개 포(浦)자를 써서 새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남양 홍씨, 경주 최씨, 반남 박씨가 씨족을 이루면서 조포마을을 형성하여왔다.
구전에 따르면 이 마을에 있는 산의 형세가 와우 형국인데, 나들이를 내보냈던 어미 소가 새끼소를 기다리는 안타까움과 아침에 풀을 뜯던 어미 소와 저녁무렵 송아지의 한가로움이다 한다.
또한 이 산은 험한 파도가 몰아칠 때 막아주는 역할도 했다는 포구의 애환이 담겨져 있기도 하지만 지금은 민등산이 되어버렸고 계화간척지 공사로 인해 많은 양의 산 흙이 소멸되면서 와우 형국이라는 이름조차도 없어진지 오래이다.
와우 형국에는 언제부터인가 당집이 있었고, 마을의 액운이 닥치거나 바다에 나간 남편의 무사고를 비는 마음에서 아낙네들의 기도 장소가 되기도 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조포마을의 주민이 평온을 유지하고 살수 있는 것은 산신제 음덕이라고 믿어왔으며, 산신제를 지내던 산신당은 6․25사변 당시까지 해도 움막이 남아있다가 그 이후 소실되었다고 한다.
지형적으로 순탄했던 조포마을은 일제강점기에 ‘노길리’라고도 불렸던 적도 있다. 노길리라 불렸던 것은 고기잡이로 번성했던 한때 새포장이 열리기도 하여 마을이 번성하기를 바라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새포 장날 전후해서 빚 독촉을 하게 되면 “세포 장날 만나세”했다는 속담이 있기도 하다.
70년대 이전에는 천수답에 의존한 마을 주민은 쌀 한 톨 얻지 못하는 흉년이 계속되면서 3~4년에 한번씩 양식을 장만하기도 하였지만 거의 초근목피로 연명해 왔다.
6․25때 이후 한때는 지리적 여건으로 간첩선이 드나드는 간첩들의 통행로가 되기도 했다.
행정구역이 부안군 동진면 양산리 새포마을로 불러오다가 1983년 2월 15일자로 계화출장소가 계화면으로 승격되면서 부안군 계화면 양산리 조포2마을로 부르게 되었으며 살기좋은 마을로 정평이나 한때 80여가구 600여명의 주민들이 오순도순 정겹게 살아온 마을이었다.
이농현상과 청장년의 도시진출로 지금은 100여명의 주민들이 서로 인정을 베풀고 도우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