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동남쪽은 기름진 넓은 평야이며, 서북쪽은 수풀이 우거져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의 수풀로 인해 마을에 재앙이 없다하여 마을 이름을 덕림으로 칭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현재 이 마을은 김양배 이장과 장영순 부녀회장을 중심으로 40여세대 100여명의 주민들이 서로돕고 존중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모범적인 마을로 정평이 자자하다.
덕림마을은 전통적으로 정성껏 차린 음식과 깨끗한 옷을 입고 풍년과 안녕을 빌며 후손들의 번영을 비는 당산제가 있어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면 남녀노소가 모여 액운을 막는 금줄을 마을입구에 치고 당산제를 지낸후, 두께가 한아름이나 되는 줄을 만들어 줄메기(줄다리기)를 하며 풍악을 울리고 마당밟기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어느날 씨름판이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 때마침 키가 크고 힘이 세게 보이는 젊은 선비가 길을 가다가 이 씨름판에 와서 씨름을 걸었는데 힘만 믿고 미투리를 신은 채 시합하다가 패하였다.
젊은 선비가 하는 말이 이 미투리 때문에 패했다고 변명하고 미투리를 벗어 던지고 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그곳을 힘 겨루기를 했다고 ‘힘메기’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시합에 지고 이곳을 지나가는 젊은 선비의 허세를 빙자해 ‘가는쟁이’라고 부르는 유래가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조선 후기 경에는 힘이 세고 씨름을 잘해서 ‘조장사’라고 부르는 사람이 살았는데, 이 장사가 지금의 줄포장에 오갈 때 돌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커다랗고 기이한 돌이 있어 장에 갈 때는 별일이 없었으나 맨손으로 집에 오는 날이면 이상하게 그 돌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