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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이석기 칼럼

매국노 이완용 선정비 거꾸로 세우자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21.03.10 17:04 수정 2021.03.10 05:04

매국노 이완용 선정비 거꾸로 세우자
↑↑ 이 석 기 부안서림신문 대표
ⓒ 부안서림신문
우리에게 있어 3월과 8월은 역사적으로 분노와 슬픔과, 아픔과 환희를 되 짚어보는 달이 아닌가 싶다. 일제강점기, 3월은 만세운동이 시작된 달로 분노와 슬픔과 아픔이 함께하는 역사적인 달이며, 8월은 광복의 환희가 함께했던 달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제강점기 일제의 만행은 결코 잊을수 없으며 잊어서도 안되는 우리의 아픈 역사다. 3월만 되면 우리는 머릿속에서 잊을수 없는 매국노가 떠오른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이다. 또 이완용을 생각하면 우리 부안군민은 줄포면사무소 창고에 처박혀 있는 ‘이완용 선정비’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최근 이완용 선정비를 창고에 처박아둘 것이 아니라 줄포지역에 다시 세워 후손들에게 이완용의 매국의 역사를 잊지않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다만 필자는 이완용의 선정비를 다시 세우되 거꾸로 처박아 세우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우리 후손들이 이완용의 선정비가 왜 거꾸로 세워졌는지를 궁금하게 만들고, 따라서 설명문을 통해 이완용의 매국을 다시한번 각인 시켰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다. 전국적으로 친일 잔재인 수백개의 비석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우리 부안에서 이완용 선정비를 거꾸로 세우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다. 친일 잔재는 우리 전북에서만 131건으로, 우리고장 부안에는 김상만 고택과 구 부안금융조합, 이완용 선정비, 하장갑문, 호국영렬탑, 군사시설 등 6건이 존재하고 있다. 이 같은 친일 잔재 가운데 건물등은 어쩔수 없다 해도 비석이나 현판같은 경우 거꾸로 설치할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매국노 이완용은 한때 전라북도 도백(지금의 도지사)이 되어 변산구경을 나선 적이 있었다. 1898년 어느 가을밤이었다고 전해온다. 갑자기 줄포에 큰 해일이 들이닥쳐 주민들은 가재도구를 잃고 인근 야산으로 피신하였으며, 줄포항의 배들은 지금의 십리동 마을과 장동리 원동 마을의 똥섬으로까지 밀렸었다고 한다. 이때 도백인 이완용은 줄포에 와서 참상을 살피고 부안군수 유진철에게 난민 구호와 언뚝거리 제방을 중수토록 했다. 제방은 더욱 견고하게 수리되었고, 오늘의 대포가 생겼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서반들 매립 공사가 이어져 오늘의 줄포 시가가 형성되었다. 다음해 정월 부안군수와 주민들은 이완용의 구호 사업을 기리는 선정비를 장승백이(지금의 장성동)에 세웠다. 그러나 광복이 되자 매국노를 칭송하는 이 선정비는 수난을 맞기 시작했다. 유실 위기에 처한 이 비석은 한 개인에 의해 보관되어 오다가 1973년에 당시 김병기 줄포면장이 이 비석을 3000원에 구입하여 줄포면사무소 뒤에 세워두었다고 한다. 20여년을 면사무소 뒤에서 사람들의 눈길도 끌지 못하던 비석은 1994년에 ‘나라 바로 세우기 및 일제 잔재 없애기 운동’의 일환으로 다시 철거되어 지금까지 줄포면사무소 창고에 반파된 채로 보관되어 있다. 이제 이를 끌어내어 길바닥에 뉘어 밟고 다니도록 하든, 거꾸로 세워 침을 뱉게 하든 후손들에게 매국노 이완용의 참상을 보여 줄때다. 아무리 줄포 주민들의 구호 사업을 기리는 선정비 이었다고는 하나 역사에 길이 남을 매국의 죄를 덮을수야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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