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하영 특별기고-부안 석불산, 평장사 두방묘역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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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하 영
전북과학대학교 교수 |
ⓒ 부안서림신문 |
부안군 석불산에 위치한 평장사 휘(諱)두방(杜邦) 공의 묘소는 지금으로부터 약 774년 전에 고려중기에 건립된 묘역이다. 두방 공은 고려 예종(睿宗)시대에 정2품의 재상인 평장사를 역임하였으며, 본관이 두릉(杜陵:만경현)이고, 만경현(현 김제시 만경읍)출신으로 두릉두씨 5세조이다. 공의 아들인 두경승장군은 고려 명종조에 김보당난과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고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에 봉해진 만경현출신의 고려시대의 명장이었고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에 「두경승전」에 만경현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전라도가 배출한 자랑스런 인물이다.
207년전 정조시대 김제출신 유학자 두만형(杜萬馨)에 의해 쓰여진 『두릉서(杜陵序』 및 『두릉두씨세보』 『청담 두진열선생』등의 문헌에 의하면 두방 공의 묘소가 위치한 석불산 일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774년 전에 고려조에서 국내(局內) 4위산지를 두방 공에게 사패한 땅으로서 석불산 일대는 고려말 즉 지금으로부터 약 624년전에 이르기까지 약150여년간 두릉두씨가 영유하게 되었었으며, 제각 비석 석물 등이 구비되어 위용을 과시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근세조선(近世朝鮮)에 이르러 사패지를 환수 당하고 가지(加之)에 지금으로부터 약404년전 14세 선조조에 이르러 임진왜란공신 고희(高曦) 선전관(宣傳官)(영성군(瀛城軍) 제주후옥구(濟州後沃溝)) 에게 이 땅을 사패함으로써 비갈(碑碣)등 석물 일체를 도괴(倒壞) 당할뿐더러 비참하게도 연례향사(年例享祀)도 약160여년간 중단 당하였다. 그 뒤 조선조 정조조에 이르러 누대간(屡代間) 선대 조상들의 소송투쟁이 주효하여 21세 휘 두만선(杜萬善)공의 유서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240년 전인 1780년(정조4년)경부터 두방 공의 묘소를 복구하고 매몰되어 있던 석물의 일부(장군석등 3점)을 찾아 다시 세우며, 연례향사를 계속하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공의 선친인 두맹라(杜孟羅) 공은 보문각 진사를 역임하였고, 공의 조부인 두수총(杜遂籠)공은 원종공신으로 대호군(大護軍)의 중직을 역임하였다.
후손인 두재균 전 전북대 총장 및 두세훈 전라북도의원에 의하면 “평장사 두방묘역은 고려중기인 1245년경에 조성되어 774년 된 묘역으로 지금까지 전 해오는 고려시대 분묘는 지방에는 희귀하다고 알려져 있다고 하며, 문인석은 240년전 조상들에 의해서 지하에서 발굴된 유적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희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며 “두방의 묘역은 고려시대의 묘제를 연구하는데도 학술 및 민속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유적이 된다고 사료된다”고 말했다. 향후 두릉두씨 종친회(두봉신회장)에서는 묘역을 재정비하고 사적비를 세우는 등 현창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평장사 두방 묘역이 위치한 석불산일대는 자연경관이 수려한 명승지로 드라마 촬영지인 〈석불산영상랜드〉가 있으며 두방묘역 바로 옆에는 고희장군의 유물과 사당이 있는 효충사가 있다.
<전북과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