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의 신문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서림신문 창간 26돌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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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석 기
부안서림신문대표 |
ⓒ 디지털 부안일보 |
2014년 8월, 서림신문이 26돌의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서림신문의 창간 일을 기억하고 있는 각계각층 독자들의 축하전화가 빗발치고 화환과 축전이 배달되어도 그리 즐겁지가 않습니다.
꽃망울을 피우기도 전에 온 국민의 가슴에 피멍을 남기고 간,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은 우리들의 아이들이 있고, 하루가 멀다하고 재난에 가까운 인재가 곳곳에서 터져나옴에 모두 우리의 책임이라는 뼈아픈 되새김도 그러하지만, 26살의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 끼우며 넘어지려 할땐 곧바로 중심을 잡아주던 수많은 독자들과 필자의 선후배들이 하나의 영상물이 되어 눈앞을 스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명 안되는 신문사 식구들과 식사한끼 함께하는 조촐한 생일잔치마저 준비할수 없었던 아픈 마음도 아픈 마음이지만, 지금껏 돌보아준 독자들과 선후배들에게 이렇다 할 보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더욱 마음이 아픈 하루였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도 서림신문과 연을 맺고있는 선후배들이 자주 쓰는 말입니다.
“서림신문을 알면 그것이 곧 고생의 시작이다”고…….
이에 맞장구치는 또 다른 선후배들의 말이 있습니다.
“쥐뿔도 없는 신문사가 일은 꼬박꼬박 터트린다. 제발 돈 되는 일좀 했으면 좋겠다”고…….
틀린말은 아닙니다. 뒤돌아보면 필자와 서림신문을 알아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직계 가족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수많은 선후배들이 필자로 인해 아니, 서림신문으로 인해 고생했고 앞으로도 고생할일만 보입니다.
이 같은 선후배들의 고생이 오늘의 서림신문, 26살 청년의 서림신문으로 만들지 않았다 싶습니다.
그럼에도 그 선후배들은 도망치지 않고 서림신문사에서 벌이는 일이라면 또 고생을 자처하고 나섭니다.
“힘들고 고생은 되더라도 보람있는 일이다”는게 이들 선후배들의 한 목소리 입니다.
고마울 뿐입다.
막노동에 가까운 각종 행사를 잘들도 처리해 냅니다.
무보수 막노동에 아무리 힘이 들어도 성질나쁜 필자의 이야기를 잘도 따라줍니다.
벌써 11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매년 1월 1일 해맞이 행사인 썬키스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손발이 얼고 밤새 눈 치우는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이들 선후배들은 군말 한마디 없이 웃음으로 대해줍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우리나라 이왕표 선수 등 국내선수는 물론 세계 각국 40여명의 선수들이 출전한 두 번의 세계프로레슬링 대회와 세계적인 테너 박인수초청공연,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희아초청 공연, 32차례의 부안군민노래자랑 등 헤아릴 수 없는 26년 동안의 각종 행사에 이들 선후배들은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대박을 만들어 낸 여섯 번의 ‘님의 뽕’ 축제의 중노동에도 도망치는 선후배는 없었습니다.
모두가 ‘공익적 행사’라는데 신바람이 나 있는 것입니다.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행사를 준비해도, 누구하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해주는 사람 없어도 이들은 또 ‘공익적 행사’를 만들어 냅니다.
26살의 청년으로 키워 온 서림신문 독자들과 필자의 선후배들이 더욱 보고픈 생일날 입니다.
고생스런 일을 시작할 때마다 이들에게 하는 필자의 말이 있습니다.
“당신들에게 진 빚, 죽을 때까지 갚지 못한다. 다만 나보다 우리를 위해 살겠노라”고…….
오늘도 다짐해봅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지역신문’ 답게 부안의 관광, 문화, 교육이 살아 숨쉬고 경제인구가 부안으로 역 유입되는 상황이 연출 되도록 군민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스물 여섯살의 성년 신문이 되도록 준비 하겠습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군민 모두가, 부안발전을 앞당기는 일은 “내 몫이고 내가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은 것부터 솔선 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드는 역할, 그것이 바로 서림신문의 몫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우리 모두가 ‘내가 살고 있는 부안을 위해 내가 해야 할 몫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찾아 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지릿대 역할을 서림신문은 마다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리며, 그동안 사랑과 관심으로 감싸 안아 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4년 8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