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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특별기고

장세형기고-호국보훈의 달에 영웅을 보내며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4.06.26 11:42 수정 2014.06.26 11:41

↑↑ 장 세 형 6.25참전유공자회 부안군지회장
ⓒ 디지털 부안일보
지난 5월, 한분의 노병이 타계 하셨다. 6.25참전유공자회에서는 회원들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김천희 사무국장을 통해 우선 조문토록 하고 입관시에 사용할 태극기와 보훈처장의 조기를 개양하도록 했다. 다음날 김 사무국장은, 유족인 딸이 “우리 아버지 한평생 고생하시고 가셨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전우들께서 호강시켜 주십시오”라는 말을 듣고 울컥한 감정에 눈물이 흘러 장례식장을 급히 빠져 나왔다고 전하는 말에 가슴이 아팠다. 예정대로 영결식을 집행했다. 1대대 장병들로 구성된 의장대 7명의 운구. 나팔병의 장송곡 취악. 조총병의 조총발사. 떠나는 전우에게 경례 등 엄숙한 의식이 짧은 시간에 치러졌다. ‘우리 아버지 가시는 길 호강시켜 달라’던 딸이, 통곡하며 “고생만한 우리 아버지 불쌍하다”며 몸부림치며 슬퍼하는 모습이, 전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겠노라고 먼길에 노구를 이끌고 장례식장에 찾아온 전우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우리가 6.25 참전 유공자 호국영웅의 장례의식을 거행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손들만이라도, 비록 못배우고, 비록 가난했을지라도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가 대통령보다 더 존경할만한 이 나라를 지켜낸 영웅이었음에 자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6.25 유공자 참전 노병의 일생은 수많은 죽음의 공포를 체험하고, 휴전 후 고향에 돌아와 오직 먹거리를 얻기 위해 친척과 친구와도 멀어졌다. 아들 딸 낳아 기르면서 못배우고 변변한 친구없는 지난날이 한이 되지만 자식만큼은 잘 가르쳐야 겠다고 허기를 참아가며 한세상을 살아온 노병인 영웅들이다. 친구인 옛 전우들이 80세를 훨씬 넘어 허리 굽어 거동이 불편한 지친 몸으로 먼길 여행 한다고 힘없이 쓰러져 간다. 장례식장에는 조문객도 드물고, 옛날 사선을 넘나들며 살아서 고향 가자고 붙들고 울던 그 전우가 고향에는 아직도 240여명이 살아 있으면서도 영전 앞에서 무용담을 회상하며 조문하는 전우가 한명도 없다. 3월 어느 날, 호국 영운인 노병이 타계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노명 세명이 영전을 찾았다. 넓은 장례식장에는 아들과 사위 둘이서 영전 앞에서 외롭게 슬퍼하고 있었다. 딸과 며느리, 어린 아이들뿐 조문객은 한명도 없었다. 발인은 더욱 쓸쓸하리라 미리 짐작 할 수 있었다. 이에 백상록 재향군인회장과 1대대 대대장. 예비군 기동대장 간담회 자리를 마련하고, 노병의 장례 의식을 거행 할것을 합의하여 1대대장으로부터 의장대를 편성하여 운구, 조총발사, 나팔명의 장송곡 취악, 6.25참전 유공자회 부안지회의 임원과 가까이 있는 회원을 소집하여 장례의식을 거행 할것에 합의했고 곧바로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 후 세분의 호국영웅이 타계하여 영결식을 치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자라” 전쟁터에서 우리들이 애창한 군가 ‘전우야 잘자라’가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고 엊그제 같은데 노병들은 하나 둘씩 우리 곁을 떠난다. 5월과 6월에 세분의 노병이 치진 몸 이끌고 먼길을 떠났다. 끝으로 6.25참전유공자회 후원회를 구성하고 참전 영웅들의 영결식 행사 아이템을 제공함은 물론 영결식 내용을 지상에 중계해주는 부안서림신문 이석기 대표에게 240여명의 노병과 가족을 대신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또 온 군민이 호국영웅인 노병들에게 따듯한 관심을 가져주실것을 소망하며, 엊그제 노병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읽었던 조사를 다시한번 읽어본다. 선배님! 지친 몸 지탱하지 못하고 먼 길 떠나시는군요. 선배님이 나라 구한 그 공을 인정하여 국가는 호국 영웅으로 예우를 하겠다는데 그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떠나십니까? 오늘 고향에 남아있는 허리 굽은 옛전우와 후배현역들이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가십시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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