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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석 기
부안서림신문 대표 |
ⓒ 디지털 부안일보 |
119.
참으로 친숙한 숫자이다.
쉰다섯 나이의 필자가 어렸을때만 해도 119는 화재 발생시 이를 진압하는 기관인 소방서의 전화번호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119는 다르다.
지금의 119는 촌각을 다투는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생명의 숫자로 국민들 사이에 각인되어있다.
그 뿐인가 굳이 사람의 생명과 관련이 없다해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불편하거나 위급할 때 신속이 이를 해결해 주는 기관임에 틀림없다.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익히 듣고 보아왔듯, 열악한 환경과 복지에도 불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119 대원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정신적 봉사자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느땐 사람의 생명이 이들 손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닐때가 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지고 또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119의 어수룩한 출동 체계가 가끔씩은 귀중한 생명을 잃게 할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지울수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투잡을 하고있는 필자가 수많은 피서차량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틈새에 끼어 변산방향 도로를 달리고 있던 10여일전의 어느 날이다.
5~6세의 아들을 안고 마실길 바윗길을 내려가던 50대 남자가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다.
필자는 차를 급히 갓길에 세운다음 아내와 함께 뛰어 내려갔고, 추락한 남자는 머리에 피를 흘린체 거꾸로 쓰러져 있었다.
먼저 바위를 내려간 것으로 보이는 남자의 아내는 발을 동동거리며 어쩔줄 몰라했고, 필자와 응급구조에 조금의 식견을 가지고 있는 필자의 아내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듯 분담해 일을 맡았다.
필자의 아내는 곧바로 차로 달려가 생수와 화장지를 꺼내들고 달려 남자의 머리를 씻기고 지혈에 나섰고, ‘목을 다친것 같다’며 119가 올때까지 남자를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 의식을 잃을걸 염려해 계속 말을 시켰다.
그사이 필자는 119에 응급구조를 요청했다.
변산이 고향인지라 누구보다 이쪽 지리에 밝은 필자는 119에 전화를 걸어 “새만금 전시관앞 삼거리에서 변산해수욕장 방향 합구 지나 2㎞ 지점 마실길이다”라고 자세히 위치를 알려준뒤 도로 위로 뛰어 올라갔다.
응급구조차량을 조금이라도 빨리 인도하기 위해서다. 환자 상태로 볼때 위급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말이 어눌해지고 팔과 하체에 감각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119는 우왕좌왕 하기 시작했다.
119 대원이 “지금 출동중이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한참동안 급한 목소리로 위치를 알려주며 통화 하던중에 번지수가 틀리다는걸 알았다.
“부안 119가 자세히 설명을 해도 위치파악 하나 제대로 못하느냐”며 버럭 고함을 지른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대원은 “저희는 군산 119로, 지금 비응도에서 출동하고 있는데요?”
119 상황실이 위치파악을 잘못한 것이다.
곧이어 또 한통의 전화가 또 걸려왔다.
이번엔 변산해수욕장에 파견나온 119 응급구조대다.
아니나 다를까 통화후 5분도 안돼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반대편 차로 갓길에 서있는 필자는 모자를 벗어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 응급차량은 사이렌소리만 요란한채 그냥 지나쳤다.
다시 119에 전화를 했으나 “지금은 전화를 받을수 없다”는 안내멘트만 나온다.
절벽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필자의 아내는 도로위에 서있는 필자에게 ‘빨리빨리’라는 신호를 보내온다.
119를 기다리던 필자도 이젠 육두문자가 나온다.
한참후 전화가 또 온다.
위치가 어디냐는 것이다. 다시한번 자세히 위치를 설명한다.
전화를 걸어온 대원은 필자를 환장하게 만들었다.
“변산에서 출동해 좀전 거기 지나왔는데요. 저희 지금 새만금으로 가고 있는데 잘못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되돌아가겠습니다”
아까 그냥 지나친 그 응급구조차량이다.
시간은 자꾸간다. 절벽아래서 119 오기만 기다리던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미칠지경이다.
결국 도착한 119구조대원들과 필자는 환자를 들것에 실고 가파른 바윗길을 올라 이송했다.
부안읍 소재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이 환자는 전주소재 대학병원으로 곧바로 이송됐다.
익산에서 우리고장에 피서 왔다가 변을 당한 환자가 궁금해 그 아내와 어제 전화 통화를 했다.
머리를 크게 다쳤으며 7시간의 대수술을 받았으나 지금까지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단다.
이 같은 대수술과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환자의 탓을 119에 돌리려는 것은 아니다.
이 환자가 생명이 위독했더라면 119의 이 같은 상황실 근무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까 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현재 119는 긴급전화를 도 종합상활실에서 처리하고 있고, 이에따라 지리에 밝지못한 근무자일 경우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연출해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곤 한다.
나중에서야 호흡을 가다듬고 알게된 일이지만 필자가 구조요청을 한 시간대와 같은 시간대에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한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