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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조덕연칼럼-여인의길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1.08.27 09:37 수정 2011.08.27 09:31

 
↑↑ 조 덕 연 서림신문 논설위원
ⓒ 디지털 부안일보 
삼종지도(三從之道), 유교경전인 예기의 의례 상복전에 나오는 말이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면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르는것이 여인의 길이라 이르는 말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따르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르는것은 필연이라 할수 있으나 남편을 따르는 길은 고통이 따르는 길이다. 시부모 병수발에 자식 키우며 가정 이끄는것이 어디 쉬운일 이겠는가? 남편이 건강하다면야 그래도 견딜만한 삶이 될지 모르나 남편이 병약하다면 그 삶은 고통의 연속일것이다. 그나마 생존해 있다면 희망이라도 있다. 남편죽고 나면 청상고절(靑孀孤節), 젊고도 젊은 나이에 홀로되어 절개를 지키며 살아가야 하니 그 외로움과 고단함을 말로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 효열장을 받은 여인의 비문을 보면 그 고통을 엿볼 수 있다. 열녀의 첫번째 길은 남편죽고 나면 문밖출입 아니하고 사는것이 의무이다. 외부와 단절하며 죽어지내는 것이 열녀의 길이다. 어쩌다 외부와 접촉하여 외간 남자와 말을 나누거나 집안의 식솔인 머슴에게 동정을 베풀다가 시부모의 눈 밖에 나는 날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유도 당하고 만다. 여인의 죽음을 강요 하는데 앞장 서는 것은 친정 오라버니 몫이었다. 참으로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강요 받았던것이 양반가 여인의 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몸과 마음 다바쳐 역할을 다해온것이 조선조 여인상 이었다. 효를 근본으로 알고 희생해온 결과물은 나라님이 내리는 효부 열녀 칭호였으니 대가치고는 너무도 가혹한 삶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 병원에서의 일이다. 한 병실에 할머니 네분이 입원해 있다. 팔십이 된 할머니는 언어장애, 기억장애 , 시, 공간 능력 저하등의 행동을 보이는 인지적 치매환자로 딸이 간호하며 보호하고 있다. 그 모녀는 한 병실에서 3년째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기약없는 긴긴 세월을 병간호 하며 살아 갈거란다. 천진한 그 모습은 아름다운 바보 천사의 모습이다. 90세 된 할머니는 홀로 병상에 누어 죽기를 기다린다. 음식을 거부하며 아침에 눈을 뜨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원망하며 왜 죽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탄한지 8일째다. 멀리서 사는 딸들이 가끔씩 오가며 병간호 하나 가까운 며느리는 볼수가 없다 . 팔십 중반인 할머니의 병간호는 며느리가 한다. 귀가 어두우니 번복하여 설명하고 지극 정성 간호한다. 참한 며느리 모습을 보며 간호 과장이 한마디 한다. 요즘 보기드문 효부라고 어머니 병간호를 며느리가 지극정성 하는 예는 보기가 드믈다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며느리와 딸 그리고 시어머니는 하나다. 삼위가 일체 인것이다.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이고, 친정어머니에게는 딸이며, 아들며느리에게는 시어머니인데, 왜 딸 노릇은 잘하고 며느리 몫은 거부하는 것인지, 아들며느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것일까? 곧 늙어 아들 며느리가 소 닭보듯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생각하다보니 간호에 열중하는 며느리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온다. 며느리는 말한다. 어머니와 딸사이가 편한 이유는 딸이 자랄때 엄마와 공감하며 지낸 세월이 많았기에 서로 편안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시어머니 편하게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시간나면 함께 있어주면 되는거란다. 삼종지부(三從之婦)의 삶은 어떨까 ? 시어머님 잘모시고, 아들 딸 손주 보살피며, 항상 여유로운 삶을사는 지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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