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기 전봉준역사캠프 참가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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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유 진
부안여고 1년 |
ⓒ 디지털 부안일보 |
나는 지난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등에서 주관한 ‘제13기 전봉준 역사 캠프’를 다녀왔다. 이번 행사의 주요 탐방지는 경상북도 상주와 경주. 사실 처음에 나는 이곳들이 도대체 동학과 무슨 상관이 있어서 그 먼 곳까지 동학캠프를 간다는 것인지 어리둥절했었다. 하지만 동학을 창제하신 수운 최제우 선생의 생가가 경주에 있고, 그곳 용담정에서 동학의 기본이념을 정립하여 포교 원년을 삼았다는 사실, 상주에서도 동학농민혁명이 크게 일어났다는 사실들을 알고 나서야 겨우 우리가 그 먼 곳까지 가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처음에 들른 상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동학의 본부 건물이라 할 상주 동학교당이다. 동학교당은 동, 서, 남, 북재의 4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심 건물은 북재였으며, 동재에는 남자 교도들이, 서재에는 여자 교도들이 묶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각 건물들의 입구의 방향이 보통 건물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동재와 서재는 입구가 모두 동쪽에, 북재와 남재는 모두 남쪽에 있었는데, 흔하게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 습관에 얽매이지 않는 눈을 갖도록 노력해야 새로운 사실들이 보인다는 점을 깨달았다.
다음 날에는 불국사, 김유신 묘, 경주박물관, 감은사지 터를 비롯한 경주 일대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동학만 머릿속에 넣고 참가했는데, 뜻 밖에 그 지역의 전통문화를 다시 한 번 차분히 살펴볼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 불국사에서 나는 다보탑에 4개가 있어야 할 해태상이 일본의 만행 때문에 1개 밖에 남지 않은 것에 크게 놀랐다. 식민지의 아픔이 이런 곳에까지 남아있을 줄이야. 이제는 좀 반성도 하고 사과도 하면 좋으련만, 지금까지도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겨대는 일본을 보면 아직도 그들은 멀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러한 점들이야말로 일본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그 정신은 후진국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자 했던 동학의 지도자들은 그만큼 선견지명이 깊었던 것일까? 캠프에서 동학을 배우는 기간 내내 나는 이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김유신 묘는 가는 과정에서 산을 넘기도 하면서 정말 힘들게 도착한 곳이었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도착한 그 곳에서 삼국을 통일한 주역인 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을 회상할 수 있었다. 비록 고구려의 옛 땅을 포함하지 못한 불완전한 통일이었다지만, 대업을 이룩한 김유신 장군의 묘 앞에 서니 지금 또 다시 둘로 분단중인 우리도 언제나 그때처럼 통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탐방 외에도 기쁨은 많았다. 동학 골든벨도 하고 창의문 발표대회도 하며 마지막 밤을 즐겁게 보낸 것이다. 동학에 대해 배운 것을 총정리하며 행사 참가의 의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신 창의문 발표대회에 참가했다. 백산 격문을 현대적 감각으로 바꾸어 발표하는 것인데, 동학혁명의 이념인 보국안민 실천과 반외세 반침략에 대한 항거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격문을 나는 ‘청소년 인권 개선을 위해 지금 당장 일어서라!’는 주제로 바꾸어서 발표했다. 농민군 복장을 하고 목검을 들며 창의문을 발표해서 상을 받긴 했지만, 아마 내 생에 그렇게 창피하고 떨렸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물론 나중엔 그것도 좋은 경험이자 추억이 되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날은 해월신사 최시형 선생과 그 가족들이 살았던 용담정에 들렸다가 삼례 동학유적지를 거쳐 귀가길에 올랐다. 수운 선생의 발자취를 밟다보니 나도 만약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당연히 동학교도가 되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저 동학과 관련된 곳이라면 백산, 황토현 밖에 몰랐지만 이제는 상주, 경주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남아있는 수많은 동학의 흔적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서 좋았다.
3일 간의 무더운 여름날에 피부가 다 탈만큼 열심히 돌아다녔던 전봉준 역사캠프. 그것은 몸이 힘든 것보다도 마음이 더 벅찬 행사였다. 동학운동의 발상지인 내 고장이 더욱 자랑스러워졌고, 민중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선각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새로워졌다. 나는 앞으로 자랑스러운 동학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겠다. 사회의 부정과 부패,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정의감을 늘 갖겠다. 이것이 내가 3일간의 불볕더위 속에서 온몸으로 배운 것이다. 내 마음 속에는 지금 그날 동학의 그 함성이 우레처럼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