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서면 석상리 청일마을은 부안읍에서 북서쪽으로 8㎞ 지점에 위치한 순 농사마을로 고려말엽부터 인가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개나리’라고도 부르는 청일마을은 아을 이장 유재훈 씨와 부녀회장 전선옥 씨, 노인회장 이상수 씨등이 주축이 되어 현재 34가구 60여명의 주민들이 서로 돕고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따뜻한 마을로 알려져 있다.
청일이라는 마을의 유래는 지금부터 약 770여년 전으로, 당시 이 마을에 효성이 지극한 젊은 부부가 노모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비록 홀어머니였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고 슬하에 아들은 하나였지만 가족들 모두 화목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토록 정성으로 모시던 어머니가 자리에 눕더니 회복이 어려워져갔다.
걱정이 된 아들 내외는 어머니의 병환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효험이 조금도 없었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병명조차 모르는 것이었다. 그렇게되니 집안분위기는 침울할 수 밖에 없었다.
다녀가는 의원들 조차도 병명을 모른다며 “운명은 하늘에 맡겨야 한다”고 말하고 돌아 서버리니 효성이 지극한 이들 부부의 심정은 말이 아니었고, 그러하기를 일년 남짓 되었을 때 이 집에 스님 한 분이 찾아와 시주를 구했다.
아내는 바구니에 쌀을 듬뿍 담아주고 나서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어머니의 병환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눈을 지긋이 감고 듣고있던 스님은 묘책이 있긴있는데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고 말하면서 말꼬리를 흐리는 것이었다.
아내가 애걸복걸 사정을 하자 스님은 크게 감동한 듯이 말했다.
“놀라지 마십시오. 댁의 외아들을 약으로 쓴다면 병을 고칠수가 있을 것이요”라고 말하고 스님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너무 뜻밖의 일인지라 아내가 정신을 잃고 있을때에 남편이 돌아왔다. 겨우 정신을 차린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두 부부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자식은 또 낳으면 될 것이니 어머니의 약으로 대신할 것을 결정한 후 펄펄 끓는 가마솥에 아들을 넣고 내외는 하루 꼬박 신령님께 빌고 또 빌었다고 한다.
두 내외는 밤을 새우고 나니 가마솥에 넣은 아이는 동삼으로 변하여 그 동삼을 어머니의 약으로 쓰니 어머니께서는 언제 그랬더냐 하듯이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후 내외는 태기가 있어 옥동자를 낳았다.
어머니는 그후 10여년을 더 살았고 가정은 늘 화목하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니 일기는 불순하여 연일 폭우가 쏟아져 장례를 치를수가 없었다.
3일장을 넘기지 않으려고 주민들이 총동원되어 폭우속에서도 상여를 준비하여 운상하려고 하니 날씨는 청명한 일기로 변하였다 한다.
그리하여 마을이름이 ‘개인날’에서 ‘갠날’로, 또 ‘개나리’라고 바뀌어져 불리어 오다 행정구역 개편시 개일청(晴)자 날일(日)자로하여 청일마을이란 마을 이름을 쓰고 있지만 지금도 부근 사람들은 ‘개나리’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