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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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덕 연
서림신문 논설위원 |
ⓒ 부안서림신문 | |
‘나이론’은 한때 의류업계에서 인기를 장악했던 화학 섬유다.
지금부터 90여년전 미국의 듀퐁사가 개발한 합성섬유인 나일론의 또 다른 표현이 나이롱이다.
신축성이 좋고 질기어서 처음에는 양말로 시판되어 인기를 누렸고 세계 2차대전을 거치며 방탄조끼, 루푸, 천막등 군수용품으로, 스타킹 불라우스등 의류산업에 인기가 좋은 제품이었다. 값싸고 질기고 손이 덜 간다는 장점이 있어 한복을 즐겨 입었던 우리에게는 손질이 쉬워 주부들의 대환영 품목이었다.
나이롱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우리의 생활 습관에 스며들었다.
나이롱뽕은 시간을 다소 거스른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단어다.
두사람도 할 수 있고 여섯사람도 할 수 있는 화투놀이, 화투 두몫을 합치면 열사람도 함께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 나이롱뽕 이라는 말 또한 함께 놀 수 있는 숫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 붙여진 이름인 듯싶다. 날마다 사랑방에 모이면 즐겼고 친구집에 놀러가서도 왁자지껄 언제나 즐겼던 놀이 나이롱뽕은 도박이 아닌 유쾌한 오락이었기에 어른들이 가르쳤다. 먹을것이 귀한시절 십시일반 간식거리를 만들어 즐겼고, 처음 만난 친구라도 유쾌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놀이였다. 기나긴 겨울 동네 누나들과 함께한 이불속에 발 묻고 즐겼던 추억에서부터 부부간의 여행중에 즐겼던 나이롱뽕 아름다움을 간직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나이롱 환자
많이 아프거나 다치지 않았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픈척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를 익살스럽게 부르는 말이다. 소이 진짜 행세하는 가짜를 뜻한다. 자동차보험이 늘면서 보험금 싸움으로 병원과 당사자 그리고 보험설계사까지 동조하는 부정행위가 심하다 보니 그 문제가 심각하여 표준어 국어사전에까지 등재되었고 국가에서도 그 대책을 내놓을 정도로 심각한 실정이다. 당사자들은 다소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함께하는 모든이들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나는 나이롱 신자다.
주일이되면 꼬박꼬박 성당을 찾았고 부득불 거르는 날이면 성사를 보며 성실하게 다녔던 성당, 교리 공부는 물론 성경공부에 열중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았던 시절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면 피정을 통하여 신심을 채워가곤 했었다. 시간이 지나니 몸이 따르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주일미사를 빠지고도 아무 거리낌 없는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성의없이 냉담의 길로 향하고 있는듯하나 걱정과 반성 또한 무디어진다. 몸이 따르지 않으니 마음 또한 멀어지는 듯싶다. 할수 없는걸 고민하고 걱정하고 죄의식을 느끼며 마음의 무게를 감당 할수 없다면 그것은 파멸이다. 처해있는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묻는다. ‘처처불상’ 원불교 교리가 떠오른다. 내몸 가는곳에 부처가 있다. 하느님은 항상 내 마음속에 있다.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본다.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아갈때는 의욕이 충만하고 열정 또한 타 올라 시간이 부족하고 항상 성취에 목말랐기에 일순 거짓도 속임도 넘기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제 마음이 안정될 때가 되니 남을 속이거나 기만할 이유가 없게된다. 다만 원하는 것이 있다면 함께하는 모두가 평화롭기를 기원할뿐 더는 바램이 없다. 지금은 그냥 놀다가 쉬었다가 가는 삶 조금 더 쉬었다가 간다한들 달라짐도 없고 달라짐을 바라지도 않는 여유로운 자연의 삶 무엇을 저지를 것 또한 없다.
질기고 조금은 느슨한 듯 팽팽한 나이롱과 인간의 만남이 편안함을 주었듯 자연과 함께하는 우리의 삶 또한 항상 여유와 평화가 공존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