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조덕연칼럼-소요유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22.10.26 19:29 수정 2022.10.26 07:29

조덕연칼럼-소요유
 
↑↑ 조 덕 연 서림신문 논설위원
ⓒ 부안서림신문 
‘소요유’는 장자가 우화 중심으로 쓴 자신의 저서인 장자(莊子)의 핵심이자 도가의 경전이다. 주요 특징은 인생을 바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소풍이다. 갈 때 쉬고, 올때도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고 하늘이 내려준 하루하루의 삶을 그 자체로 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루하루를 마치 무슨 목적이 있는것처럼 기계적으로 소모적으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일을 권하는 삶이 아니라 소풍을 권한 삶이다. 우리는 일하러 세상에온 것이 아니고 성공하러 온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다 부차적이고 수단적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과거 생에 무엇을 잘했는지 모르지만 하늘로부터 삶을 선물받은 것이다. 이 우주에는 아직 삶을 선물로 받지못한 억조창생의 대기조들이 우주의 커다란 다락방속에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당신과 나는 이 삶을 하늘로부터 선물받아 어렵게 지금 지구에 와있다. 삶을 수단시 하지마라. 삶 자체가 목적임을 알라 이 삶이라는 여행은 무슨 목적지가 따로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목적인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대여! 이 여행 자체를 즐겨라. 장자가 말한 소요유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인생이란 소풍이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조물주는 우리에게 소풍을 보내면서 휴가증을 끊어준 것이 조물주의 생활터전과 우리가 사는 우주가 서로 흐르는 시간대가 달라서 그것이 백년이 된 것 뿐이다. 장자가 말한 소요유에는 글자 어디를 뜯어봐도 바쁘거나 조급한 흔적이 눈꼽만큼도 없다. 소(逍)자는 소풍간다는 의미이고, 요(遙)자는 멀리 간다는 뜻이며, 유(遊)자는 논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소요유는 멀리 소풍가서 노는 이야기이다. 소요는 옛사람들이 장자의 산의 이름에도 붙인 단어로 ‘장자’보다 압서 저술된 ‘시경’에서도 몇차례 등장하는 단어라 한다. 소요의 뜻은 갖가지 사람들과 얽혀 일하되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여유작작한 모습이다. 쉽게 말하자면 ‘할일없이 왔다갔다 어슬렁거리며 노닐다’ 또는 ‘목적지 없이 거닐다’라는 의미로 목적지 없이 거닌다는 점이 중요하다. 유라는 뜻 역시 ‘노닐다, 놀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라는 의미이다. 장자는 머물거나 돌아가야 할 집보다는 돌아다니는 길에 더욱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은 곧 도(道)다. 그러나 장자의 소요유를 팔자좋게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극한해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어떤것도 의식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오고 갈 수 있는 무대의 소요를 누리려면 무명, 무공, 무기 즉 이름도, 공덕도, 덕도 내세우지 않는 그저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한다고 이른다. 즉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되 자유의 규율에 규합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자는 이런 소요유를 누리는 사람이 참된 도를 깨달은 자라 하였고 이러한 진인이라야 소요할수 있다는 것이다. 문명인은 억지로 세상을 만들어 그 세상에 자신을 가둔다. 자신만 가둘뿐만 아니라 남들도 그 감옥에 밀어 넣는다. 그러나 자유인은 스스로 그러할뿐 억지로 꾸미거나 만들지는 않는다. 자유인은 갇혀있지 않는다. 명예나 공적 지위나 권세 심지어는 자기라는 감옥을 벗어던지고 대자연의 흐름과 하나되어 모든 흐름의 변화에 접속하면서 끝없이 놀 수 있다. 감옥에서 벗어나고 경계를 허물고 담없는 마을에서 노는사람, 장자는 ‘내가 곧 도인이다. 도인은 잘 놀다가 가는 사람이다’고 스스로를 도인이라 칭했다. 우리의 편안한 일상이 늘 행복했으면 한다.


저작권자 부안서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