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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산사의 겨울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22.02.10 16:07 수정 2022.02.10 04:07

산사의 겨울
 
↑↑ 조 덕 연 서림신문 논설위원
ⓒ 부안서림신문 
능가산(봉래산과 함께 또 다른 변산의 이름)에는 천년고찰이 두곳 있다. 내소사와 개암사, 두절의 공통점은 백제 무왕때 창건 되었다는 것과 절의 입구에 150년 수령의 고즈넉한 전나무 숲의 힐링공간이 있다는 것.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날 개암사를 찾는다.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 숲에 이르니 새들과 함께 청솔모가 나무뒤를 오르내리며 깜짝 반긴다. 규모가 큰 사찰에는 지금이 동안거 기간이다. 음력 10월15일부터 이듬해 1월15일까지 3개월간 승려들은 외출을 금하고 참선중심으로 수행에만 전념하는 기간이기에 산사는 고요만이 흐른다. 동지가 되면 사찰에서는 동지 새해맞이 심신 프로그램이 준비된다. 험난했던 한해 잘 견디었음을 위로하고 민속고유의 명절인 동지를 맞아 벽사진경(壁邪進慶-요사스런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런 일을 끌어들임)의 의미를 되살리고 새해엔 송구영신(送舊迎新-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음)을 새기며 찹쌀로 새알심을 빚어 팥죽을 쑤어 나누고 동지불공을 드리고 스님과 차담, 명상, 봉사 등의 행사를 치른 후 초하룻날에는 떡국을 나눈다. 겨울산사는 이렇게 겉으론 한산하게 보이지만 그 움직임은 인간 삶의 모습 그대로이다. 산사의 풍경소리는 고요함의 상징이다. 소요가 사라진 자리 홀로서서 쓸쓸함이 느껴지지만 인간은 홀로 있음이 본래의 모습이다.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혼자 있음에 좋고 그것이 수행이다. 새소리만 들리는 숲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잠깐이지만 나를 바라보는 귀중한 시간이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양쪽기둥에 걸려있는 주련의 장엄함이 마음을 여미게 한다. “거룩한 빛이 어둡지 않게 만고에 밝으니”, “이 문안으로 들어오면 알음알이를 하지 말지어다”.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니 하찮게 아는 척 하지말고 다소곳 하라는 당부의 말인 듯하다. 백제무왕 35년(634년, 내소사보다 1년 늦음)에 창건된 개암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여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로 모셔져 있다. 전면 네 개의 주련에는 모두 찬불게로 그 내용은 ‘하늘 위 아래 부처님 같은 분 없고, 우주 공간에 부처님과 견줄 사람 없도다. 세간의 모든 것 다 보았지만, 부처님 같은 성현은 아무대도 없더라’ 장엄함이 느껴진다. 불이교를 넘어서면 널찍한 차밭이 있다. 차나무는 인도 일본 중국 등 전 세계 온대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여러해살이 상록수다. 동백나무과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익산의 웅포 이남에서 자라며 보성, 하동, 강진, 해남, 제주도의 녹차밭이 유명하다. 10~11월에 꽃이 피고 다음해 10월경 열매가 맺으니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고 피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다. 해마다 곡우(4월 20일께)철이되면 다인들은 개암사 차밭을 찾는다. 조인숙 선생이 이끄는 부안 다인들의 모임인 부풍오감차 문화원을 중심으로 경상도 보살님들이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 모인다. 동이 트기전 찻잎을 따서 덖고 비비고 찌고 말리고를 번복해서 좋은 향과 좋은 맛이 나는 차를 만드는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개암사에는 우리나라 차문화 유적지가 있다. 우금암에 있는 원효방이 그곳이다.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이규보에 의하면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후 어떤인연 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원효는 부안땅에 살았고 그가 살았던 곳이 바로 우금암의 원효방 토굴이었다. 원효는 이곳에서 찻잎을 따서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로 사포성인과 늘 차를 달여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추운날씨 임에도 개암사를 찾는 사람은 매일 줄을선다. 쾌적한 임도에서 산책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아니면 삶의 짐을 내려놓고 자신을 씻어 내기 위해서다. 스님의 예불 소리가 한시름 내려놓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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