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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가는 세월이 미워라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21.06.09 11:43 수정 2021.06.09 11:43

송성섭칼럼-가는 세월이 미워라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부안서림신문 
장구하게 흐르는 세월 속에 겁(劫)이라는 세월이 있다. 겁은 천년에 한번 내려오는 선녀가 목욕을 한뒤 올라가면서 옷깃이 폭포 주위의 바위를 스칠때 그 바위가 닳아 세월이 흐른 뒤 완전히 사라지는 긴 기간이다. 또는 선녀가 목욕을 한 뒤 물기를 닦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 물방울이 바위에 떨어져 구멍이 뚫릴 정도의 세월을 말한다. 그러한 겁에 비하면 사람의 일생이란 순간이나 찰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불교에서 말하는 영업(永劫)의 세월도 너무 길어 헤아릴수 없다는 뜻이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나는 노인이 되고 해는 서산에 걸리고 말았다. 사람은 유아기를 거쳐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이른다. 세월이 참으로 무심하게 흘러갔다. 나는 사는 동안 모든것을 사랑했다. 이제는 청춘도 젊음도 가고 말았으니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한낱 꿈길 이었다. 노들강변 백사장의 늘어진 가지마다 무정세월을 묶어 본들 세월이 가지않으랴. 나는 세월이 미워진다. 노쇠한 몸은 기력을 잃고, 이는 부실하여 단단한것을 씹지 못하고 소화기관은 약하니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수 없다. 젊어서는 쇠도 녹인다고 했던가. 허리는 굽어 지팡이에 의지하는 몸이 되었고, 얼굴은 금이가고 저승꽃이 피었다. 무정한 세월은 나 아닌 나로 변모 시켰고, 눈이 침침하고 어두우니 책도 읽을수가 없다. 노인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는 ‘노인은 생활상의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도 불로초를 그토록 원했으나 그도 허무하게 나이 오십에 죽고 말았다. 수다쟁이들이 말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고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고 말들 하지만 나이를 먹다보면 기억이 흐릿하고 육신은 말을 듣지않고 마비된듯한데 숫자는 무슨 숫자이며 익어 가는것도 정도의 문제이다. 세월이 미워라. 시각이나 청각, 미각도 둔해져서 제 기능을 못하니 나이는 신체의 모든 기능을 망가지게 만들었다. “천년을 함께 있어도 한번은 이별해야 한다”는 중국 중운지휘선사의 말처럼 우리는 결국 한번은 이별해야 한다. 밀리어 오는 파도처럼 세월에 밀리어 사랑도, 초록빛 청춘도 가고 말았다. 때로는 녹슨 심장에도 뜨거운 피가 흐르건만 젊은날의 열정이 식어버린체 모든일을 체념하는 슬픈 습성에 젖어 있다. 이제 나이가 들다보니 허튼 감상에 자주빠진다. 하루해가 지고 땅거미가 질때나, 잠을자다 문득 깨어날때나, 뒷산 소쩍새의 애절한 소리가 들리면 슬퍼진다. 비오는 창가를 바라보며 회한에 잠길 때, 달밝은 밤 꽃잎이 저갈 때, 나는 슬프다. 의치를 닦을때나 물결 위에 해지는 저녁놀을 볼때 슬프다. 붙잡을수 없는 세월이니 너도 가고 나도 간다. 꽃도 세월따라 피고지고 사람도 세월따라 오고간다. 노인의 어깨위에 저녁놀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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