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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웃음과 울음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20.11.02 13:55 수정 2020.11.02 01:55

송성섭칼럼-웃음과 울음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부안서림신문 
바다는 날로 하늘을 닮아가고 산국은 봉우리를 터트리니 청량한 바람은 가을이 깊어짐을 말하고 있다. 나잇살을 먹다보니 웃음도 울음도 잊고 산다. 웃음과 울음은 상반된 것이기도 하고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기가 막히면 웃다가 울기도 하고 울다가 웃기도 한다. 웃음과 울음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여 표출된 행위이다. 한번쯤 박장대소하며 포복절도 할 정도로 웃고싶다. 답답한 세상 대성통곡하며 울고도 싶다.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은 드넓은 만주벌판을 바라보며 ’한바탕 통곡하고픈 곳‘이라 했다. 웃음도 울음도 잃어버린 세월이 가고 있다. 눈물이 나도록 웃고도 싶고, 대성통곡하며 한바탕 울고나면 가슴의 응어리가 풀릴듯도 하지만 웃을일도 울일도 별로없는 감정이 메말라버린 노인의 일상이다. 세상을 관조하는것도 달관한것도 아니지만 세상이치가, 세상 돌아가는 꼴이 그저 그러려니 하니 웃을일도 울일도 없는 노년이다. 이제는 슬픔도 기쁨도 노여움도 없는 눈물도 말라버린 노인의 길이다. 박장대소하며 한바탕 시원하게 웃은때가 언제이던가. 가슴을 열어놓고 통곡했던 때가 언제 이던가. 아득한 옛일이 되고 말았다. 어떤이는 건강이 좋지않을 때 웃음 치료법에 대하여 장관설을 늘어놓는 것을 보았지만 실없이 정신나간 사람처럼 웃을수도 없고, 또 통곡하는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노인의 일상에 그리 대단한 일이 생길이 만무하니 웃음도 울음도 잃어버린 세월만 가고 있다. 옛말에 ‘우리 할매 웃으나마나’라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웃지않은 할매는 안면근육이 경직되어 그가 웃는것인지 우는것인지 분간이 어려운 것이다. 옛날 잘사는 양반네는 장례때 사람을 사서 울게하는 곡파라는 습속이 있었다 한다. 청성스럽게 울어대는 곡비를 사서 울게 하였다니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웃음이나 울음은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것이며, 억지 울음이나 웃음은 가식이며 허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세월이 강물되어 흐르고 있다. 고려때 목은 이색은 그의 아들 종학이 무고하게 죄를 입었으나 조정이 두려워 비통함을 풀지 못하다가 지인의 권유로 산 나들이를 따라갔다가 깊은 골짜기에서 대성통곡을 하니 가슴의 응어리와 비통함이 어느정도 풀리어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가슴에 한이 맺힌 사람은 피를 토하듯 통곡하고 나면 조금은 마음의 안정을 얻는가 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도 있다. 호탕하게 웃지는 못할망정 서로의 잔잔한 미소로 우리 사는 세상이 밝게 비추이면 좋겠다. 팍팍하고 고단한 삶속에서 배꼽이 빠지도록 한번쯤 웃고 천지가 떠나가도록 통곡하는 날이 한번쯤 올까. 오늘도 세상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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