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섭칼럼- 강릉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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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 디지털 부안일보 | |
외손녀가 캐나다에 유학을 간다 하기에 우리 내외는 일년여 만에 강릉에 사는 딸네 집을 찾았다.
반기는 외손녀와 딸 내외를 보면서 가슴 한편의 훈훈함과는 달리 엊그제 고사리 같던 손으로 재롱을 피우던 어린날의 딸은 어느새 중년이 되고 제 딸을 유학 보낸다니 가슴 한켠이 먹먹해 온다.
강릉에서 오붓한 며칠을 보내는 동안 참으로 즐거웠고 강릉에 올때마다 내가 찾는곳이 몇군데 있다. 성산 마을에 가면 온통 ‘대구머리찜’으로 유명한 가게 일색이여서 미식가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대구머리와 콩나물 두부 감자를 넣고 요리한 칼칼한 찜은 입맛을 돋우고 한 끼의 식사와 술 안주로 손색이 없어 언제나 손님으로 북새를 이룬다.
남항진에는 막국수 집이 성시를 이룬다. 메밀가루로 국수발을 직접 뽑아 얼음이 둥둥 뜬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는 막국수는 감칠맛이 그만이며 한 겨울에도 가슴까지 시원하다. 창밖에는 동해의 가이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백사장 모래벌에 하이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초당으로 발길을 옮기면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교산 허균의 생가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초당두부가 널리 알려져 있다. 허균의 부친인 허엽이 강릉 부사를 지낼 때 그곳에서 두부를 만들어 먹었다 하여 그의 호인 ‘초당’ 두부가 되었고 지명도 초당이 되었다 전한다.
교산은 우리 고장 부안과 인연이 깊은 관계로 감회가 남달랐다. 교산은 부안 우반동, 지금의 보안면 우동리에 기거하면서 홍길동전을 집필하였고 바다 멀리 바라보이는 위도를 보면서 그가 언제나 꿈꾸던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생각하며 율도국의 이상향으로 위도를 소설속에 설정하였으리라.
신분차별에 대한 민초들의 아픔을 그려낸 교산은 이매창과 문학적 교류로 절친 하였다 한다. 사학자에 따라 교산의 평가를 달리 하지만 그는 분명 시대의 반항아요, 선각자가 아니겠는가.
교산의 생가터를 둘러보면서 그의 누이 난설헌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게 한다. 교산은 결국 역적으로 능지처참의 형을 받고 난설헌은 불타는 시심과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체 꽃다운 나이에 한떨기 꽃잎처럼 저버린 기구한 운명이었다.
난설헌의 본명은 초희이다. 금지옥엽으로 자라 봉건사회의 굴래에서 신음한 그녀의 생애가 가슴 아프다. 난설헌은 규원가를 비롯 주옥같은 시를 남겼고 유교사회의 잘못된 율법이 그렇듯 아녀자를 속박하고 천시하는 그릇된 문화에서 운명에 몸부림 쳤을 그녀가 어느 별당에서 사뿐히 걸어 나올것 같은 환영속에 나의 안타까움은 마음을 저리게 하였다.
무겁고 우울한 심사로 교산의 생가터를 뒤로하고 초당두부와 막걸리 한사발로 마음을 달래본다. 초당두부를 만들때 간수를 소금물이 아닌 바닷물을 사용하기에 두부가 부드럽고 맛이 있다고 한다. 내고향 위도와 만드는 방법이 똑같아 더욱 정이 사는 초당두부이다.
울적하고 산란한 마음으로 사천의 송림을 찾았다. 모래밭에 빽빽하게 들어찬 해송사이로 소금기 인 바닷바람과 청청한 솔향은 마음을 상쾌하게 하였다. 바람을 타고 날개짓하는 갈매기와 푸른 바다, 모래톱에 부서지는 파도는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었다.
세파에 시달린 때묻은 마음과 가슴속의 티끌은 바다 바람에 날려 버리고 경포호의 잔잔히 일렁이는 물결위에 내 마음을 띄워 보낸다. 미움도, 증오고, 사랑도, 가지려는 집착도 훌훌히 털어버리고 떠나야 하는 나잇살이 되었다.
보름여를 딸네에서 머물다 그들 내외와 손녀들의 배웅을 받으며 귀향길에 올랐다.
언제 다시 볼수 있을까 건강에 자신이 없는 나는 자꾸 약해지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그들의 얼굴이 흐려져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