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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대담 / 인물

임채영, 고향 위도에 노래를 심다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2.07.25 10:28 수정 2012.07.25 10:28

 
ⓒ 디지털 부안일보 
매년 여름 위도해수욕장에 노래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9년째 이를 주선해 오고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위도출신 언더가수 임채영씨다. 올해 역시 8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동안 위도해수욕장 야외무대에서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 위도여름캠프를 준비하고 있는 임씨다. 노래에 자신의 삶을 실어 이를 고향사랑에 접목시키고 있는 임씨를 만나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말이 언더가수지, 임씨와 함께 노래부르는 ‘노래나무’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전국 어느 곳이든 불려다니지 않는곳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고향을 위해 한 일이 없다”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 해오던 임씨를 생활 근거지인 전주를 구석구석 뒤져 기어코 만나 보았다. 가끔씩 내리는 빗방울로 전주도심을 적실듯 말듯 하던 지난 23일 원고마감 하루를 앞두고, 서울공연을 마치고 막 전주에 도착했다는 임씨를 공갈 반 협박 반으로 전북도청 후문 벤치에서 만났다.
ⓒ 디지털 부안일보
처음만나 임씨를 보는순간 왜? 그가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는지 금방 알수 있었다. 장발에 검정 선글라스를 쓰고 청바지차림에 나타나 굽신 인사를 해대는 임씨에게서 때묻지않은 청순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폭염주위보에 34도의 수은주를 보인 이날 장발로 나타난 임씨에게선 조금도 더위를 느낄수가 없었다. 오히려 장발의 언더가수 임씨를 만나면서 주위가 더 시원해진 느낌이다. 특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는 남 앞에 서면 수줍어 말조차 못한다는 임씨는 무대 위에서만큼은 ‘용감한 녀석’이 된다는 지인의 귀띔을 받은터라 조심스레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는 임씨와 오랜 실랑이 끝에 카메라에 얼굴을 담는 허락을 받아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위도를 나왔다는 임씨는 마흔여덟이 된 지금까지 고향 위도 바닷가를 잊어본적이 없단다. 그럼인지 지금도 짬만나면 뻔질나게 위도를 드나드는 사람이 됐단다. 언더가수의 생활이 그렇듯, 빠듯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한때 그 좋아하는 노래를 뒤로한채 중장비 기사를 한적도 있다는 연약해 보이기만한 임씨에게서 중장비 기사의 씩씩함을 찾아볼수 없는것은 천생 노래와 살것같은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일게다. “그냥 내고향 바닷가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위도여름캠프를 마련한것 뿐인데 벌써 10년이 다되갑니다”고 말하는 임씨는 주위의 색안경을 쓰고 보는 시선이 가장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가난한 언더가수가 관광객들에게 고향을 알리고, 오직 고향바닷가에서 노래부르고 싶은 소년같은 마음으로 사비를 털어 위도여름음악캠프를 마련한것 뿐인데도 어디서 많은 예산을 지원받아 음악캠프를 열고 뒷주머니를 차는 것으로 오해하는 시선이 임씨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던 모양이다.
 
ⓒ 디지털 부안일보 
천혜의 관광지 고향위도를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오래전부터 ‘위도닷컴’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임씨의 소 박함을 이제는 부안사람들도 색안경을 벗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온다며 새까만 선글라스를 벗고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음악과 함께 산다는것, 주위의 협조가 필요한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선글라스를 다시 쓴 임씨는 “어렵지만 항상 나를 응원해 주는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털어 놓았다. 임씨의 아내 성미정씨는, 굳이 임씨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고 지인들로부터 현모양처로, 대학에 다니는 효진이 나진이 두딸과 아들 예준이의 엄마이자 임씨의 든든한 후원자로 칭송이 자자하다. 항상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효진이와 나진이 그리고 예준이도 이제는 아빠인 임씨의 열렬한 팬이자 후원자란다. 두시간여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더위도 잊은채 인터뷰에 응하던 임씨는 위도음악캠프를 위해 연습하러 가야한다며 자리를 일어섰다.<글. 이석기기자> -. 먼저 임채영씨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저는 66년 위도면 진리에서 4녀1남으로 태어나 위도초등학교 5학년을 다니던중 전주로 유학을 나와 지금껏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현재 2녀1남의 자녀를 둔 가장입니다. -. 위도해수욕장에서 음악 캠프를 열게 된 동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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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고향이 기억하고 싶지않은 사건들로 인해서 위도주민들의 마음은 황폐해져 가고 있었고, 섬의 개발로 인하여 관광입지가 좋아졌지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사각지대였습니다. 해마다 위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늘어나지만 위도의 자연환경 외에 마땅히 즐길거리가 없다는 생각에 저의 작은 힘이라도 보태어 위도를 찾는 분들에게 작은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 음악캠프를 마련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이고, 어려움만큼 특별한 보람도 있을것 같은데, 어려움과 보람은? 음악캠프를 이끌어오면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점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어디서 지원한푼 못받고 아주작은 후원금과 저 개인의 사비로 이끌어오는 것인데도 많은 지원금을 받고 음악캠프가 이루어지는 걸로 알고 있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점입니다. 그렇지만 보람이 더 큽니다. 보람이라면 위도를 찾은 피서객들이 공연장을 찾아,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공연을 즐기고 난후 무대에 찾아오셔 “위도에 와서 너무 많은 추억과 감동을 가지고 간다. 꼭 다시오겠다”라고 하시는 분들이 후년에 다시 무대로 오셔서 인사를 나눌 때 보람을 느낍니다. 또 위도음악캠프 기간에 맞추어서 여름휴가 계획을 짜려고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공연기간을 문의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가장 행복하고 보람이 있습니다. -. 임채영씨같은 애향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요? 그냥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할수있는 행사는 아닌것 같은데요. 제가 음악캠프를 이끌어 오는 것은 특별한 애향심이라기보다는 위도가 고향인 젊은이의 한사람으로서 고향발전에 마땅히 기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중 위도를 방문하고 있으며, 기억될만한 무언가를 남겨주어야 한다는 생각 끝에 음악캠프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오랜기간 다른곳에서 희생과 봉사를 통해서 얻는 기쁨을 알았고, 후에 제가가진 재능을 필요한 곳에 기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위도는 제가 노래할수 있도록 감성을 길러준 곳이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문화적으로 소외된 나의 고향에서 또 다른 기쁨을 얻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 끝으로 부안군민과 위도를 사랑하는 분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위도는 이미 어업중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고 관광산업으로 발전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관광객들을 유치할수 있는 컨텐츠가 많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응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위도여름음악캠프도 많이 사랑해 주시기를 주문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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