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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조덕연칼럼-학교 가는 길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0.09.13 15:53 수정 2010.09.13 04:01

 
ⓒ 디지털 부안일보 
이른 출근길 작은 터미널 앞에 마을버스가 멈춘다. 뒤이어 택시가 줄을지어 따른다. 버스에서내리는 학생들을 태워가기 위해서다. 학교 까지는 불과 1㎞가 채 안되는 거리임에도 학생들은 택시로 통학을 한다. 방과 후 학교 앞엔 학원버스가 줄을 잇는다. 학교가 끝난 학생을 학원으로 실어가기 위함이다. 학생들은 아침일찍 집에서 나오면 밤늦은 시간 귀가 할때까지 이동수단 거의가 차량에 의존 하는 듯싶다. 50년 전 등하교 모습과는 풍경이 다르다. 아침일찍 일곱, 여덟살의 조그만 발로 비좁고 험한길을 하루 10㎞씩은 걸어야 내가 학교를 가고 오는 거리였다. 교통수단이 오직 두 다리였던 시절 그래도 일요일이나 국경일 그리고 네 번의 방학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거르지않고 거의 학교문을 드나들었다. 광목으로 만든 사각책보에 책과 공책 그리고 필통을 넣어 등짝에 질끈 동여매고 조잘대며 학교를 오가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하다. 가끔은 그때를 상상하면 웃음을 주기도하고 가끔은 꿈속에 나타나 추억을 되 뇌이기도한다. 학교밑 가게에서 빵과 사탕을 사먹었던 때가 꿈속에 자주 등장하고 몸에 열이 많이 나던날 항시암(항아리를 묻어 만든 샘)에서 머리대고 물을 마시는걸 선배들이 학질 떼어준다고 뒤에서 두다리를 들어올려 놀라게 해주었던 기억……. 놀라면 학질이 달아난다고 믿었고 또 그걸 위안삼아 아픈몸이 낳았다고 스스로 추슬러 가는 지혜로웠던 기억……. 비가오는 날이면 파란우산 노란우산 찢어진 우산의 동요처럼 선후배가 삼삼오오 줄지어가던 도란도란한 정겨움, 후배가 몸이 아프면 선배나 동료가 교대하여 책보를 들어주고 그래도 아니다 싶을땐 자기몸 주체하기 어려운 비실비실한 체격임에도 불평없이 번갈아가며 업어서 날랐던 학교가는길. 가고 오는길이 멀었기에 남긴추억 또한 많아서 세월이 많이지난 지금도 가끔은 그때를 떠올려 보곤한다. 비가많이 오는날은 배꼽까지 물이 넘쳐 책보를 머리에 이고 등교했던 기억, 참외밭에서 변을보다 벌을서던 친구, 우유 배급이 있는날은 의례히 도중에서 우유를 빼앗아가는 큰아이들이 있어 그 아이들을 피해서 가느라 더욱 먼 길로 돌아가야했던 기억, 지금 생각하면 그리도 평범했던 그 사람들이 그때는 왜 그리도 무서웠던지……. 몸이아파 조퇴하는 날은 그리도 멀고 호젓한 길을 보호하는 사람없이 혼자서 힘겹게 걸어 다녔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오고간 등하교 길을 대충 계산해본다. 어림잡아 3만4000㎞가 넘는 듯싶다. 둘레가 4만8㎞인 지구를 맨발로 걸어서 거의 한 바퀴 돈샘이다. 흙에 신발이 박혀 신발이 찢어질듯 질퍽했던 황톳길, 눈이 많이오면 길이 분간하기 어렵게 비좁았던 길, 나병환자가 득실거려 무서웠던 길, 그러나 오가는 길에 방죽이 있어 여름철엔 목욕하고 겨울철엔 얼음을 지칠 수 있어 좋았고 드넓은 잔디밭과 나무숲이 있어 노는데 재미를 부칠수 있었던 길, 커가면서는 다정한 친구와 함께 걸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가끔은 꿈속에 나타나고 가끔은 떠오르는 추억속의 그길.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그 길이 새롭게 만들어져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로 변하고 고속도로가 가로지르고 경지정리와 구획정리로 거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지금은 없어진 길. 나의 학교가는 길은 추억속의 길이다. 오늘은 어느해 가을 운동회 한날이 떠오른다. 운동회로 지쳐있는 들독같은 나를 5㎞나 되는 먼거리를 업어주신 형님의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은 타국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형님이 가족과 함께 행복하시길 빌어본다. 오늘따라 형님 생각이 간절히 느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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