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송성섭칼럼- 시계 밥 주어라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10.07.27 21:30 수정 2010.07.27 09:35

 
↑↑ 송 성 섭 서림신문 주필
ⓒ 디지털 부안일보 
우리 동네에는 60여년 된 얘기가 지금도 가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니 세월은 그렇게도 흘렀다. 종례시간에 선생님께서 당번을 맡을 두 동무들에게 내일 학교에 일찍 나와 청소도하고 “시계 밥 주라”고 일렀다. 동무들은 선생님 말씀대로 책걸상도 정돈하고 간단한 청소를 마친 뒤 시계 밥을 주기 위해서 집에서 싸온 꽁보리밥 한 덩이를 시계추 밑에 정성스레이 올렸으나 밥을 먹기는커녕 살아날 기미가 전여 보이지 않은 것이다. ‘아하, 이놈이 보리밥은 먹기 싫고 쌀밥이 먹고 싶은 가 보다’ 생각하고 동네에서 좀 산다는 집에 가서 사정사정하여 쌀밥 한 덩이를 갖다 주어도 감감 무소식이라, ‘아마도 너무 늦게 밥을 주어 배고파 영영 죽었나 보다’ 생각하고 엉엉 울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도 자다가도 웃을 일이었다. 무지에서 오는 소치이기도 하였지만 어린 마음에도 먹지 못하면 죽는 다는 불안과 공포의 절박함 이었다. 지금은 전자시계에 배터리(battery)만 끼워 넣으면 되지만 태엽을 감는 것을 하필이면 ‘밥을 준다'고 하였으니 우리는 밥에 한이 맺힌 민족이고. 고단한 삶이였나 보다. 가난과 굶주림과 허기로 보내야 했던 지난날은 먹고 사는 것이 참으로 절실 하였다. 내남없이 가난 했던 시절, 풀뿌리나 나무껍질 까지도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로 허기를 달래야 했던 날, 우리는 암흑의 글속 같은 세월을 지나 왔다. 이 설움 저 설움 다 제처두고 배고픈 설움이 제일 서럽다는 말처럼 가슴에 맺힌 배고픈 기억은 참담하고 혹독한 것이었다. 굶주림의 고통은 모든 사람들의 이성이나 지성도 한낱 한줌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 세상 사람들은 거의 듣기 좋은 말과 기름진 음식을 좋아 한다. 횡격막 밑에 있는 위(胃)가 만족해야 모든 사람은 행복하다. 정치나 전쟁도 궁극적 목표는 위의 풍만을 위한 인류의발자국이다. 임어당도 “인간 생활의 진정한 기쁨이란 그리 많지 않은데 그중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은 인생의 기쁨 중에 기쁨이다”고 말했다. 사오월 긴긴 보릿고개 허기진 배를 허리띠 졸라매며 고통을 참아왔던 그 시절이 바늘 끝으로 생살을 쑤시는 양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청승맞게도 구차하고 옹색했던 잊고 싶은 지난 기억을 오늘 생각하는 것은 창밖에 장맛비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사람은 감정의 기복이 다르고 음식에 대한 입맛 또한 달라진다. 비오는 날이나 눈이 내리는 날, 계절이 바뀔 때, 철마다 먹을거리의 맛이 다르고 제철 음식이 입맛을 돋운다. 먹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 음식 문화는 진화를 거듭한다. 갖가지 별스러운 음식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우리들 입맛을 사로 잡기위해 야단이지만 지난날 우리가 먹어왔던 어머니의 손맛, 어머니 정성, 고향의 맛은 향수로 가슴을 앓듯 언제나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요새는 어른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먹을거리가 지천이고 밥안먹는 아이들 때문에 부모들 성화가 극성이며 쌀이 남아돌아 쌀 소비를 권장하고 쌀 제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새롭다. 한 그릇의 밥에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끼는 소중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은 밥그릇 싸움에 정신이 팔리고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터져도 제 배를 채우려는 끝없는 욕심. 치자는 백성의 배고픔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 도리이다. 먹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생명의 젖줄이지만. 모든 세상의 이치는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하였다. 굶주림과 가난의 늪에서 허덕이든 지난날 노랗게 밀려오는 현기증 같은 혼미함에 식은땀을 흘리며 잦아들던 그날을 우리는 생각하며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아! 우리의 배를 조금만 비우며 살자.


저작권자 부안서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