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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 고향은 완도 아닌 변산반도”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08.07.23 18:29 수정 2008.07.23 03:11

ⓒ 디지털 부안일보
우리고장 변산면 격포리 죽막동 수성당의 설화를 바탕으로 해상왕 장보고의 고향이 변산반도라는 추정이 제기돼 부안군민을 놀라게 하고있다. 변산면 격포리 죽막동의 유명한 ‘대막골 철마 설화’를 새롭게 해석해 “죽막동 수성당이 해상왕 장보고와 관련 있다”고 작가 최홍씨(55)가 월간지 ‘신동아’ 5월호에 ‘해상왕 장보고의 고향은 완도 아닌 변산반도’라는 제목으로 게재해 부안군민과 향우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 작가는 신동아 5월호 ‘작가 최홍의 역사 추적’에서 “해상왕 장보고 고향은 완도 아닌 변산반도”라는 제목으로 14쪽에 걸쳐 해상와 장보고가 여러 정황으로 볼때 “고향이 완도가 아닌 부안 변산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에따라 이같은 내용을 접한 부안군민들과 향우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앞으로 조심스레 학계의 추이를 지켜보자”며 관심을 보이는 등 기대에 차있다. 신동아 5월호 ‘작가 최홍의 역사추적’을 통해 최 작가는, “해상왕 장보고의 고향은 전남 완도라는 게 정설처럼 알려져 있지만, 정작 완도에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기록은 물론 설화, 지명의 흔적조차 없다”고 들고 “반면 변산반도 서쪽 끝 죽막동의 수성당 제사유물과 ‘대막골 철마설화’, 인근 지명 등에서 이곳이 장보고의 고향이라는 선조들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위해 수성당의 유래와 주변 지명을 상세히 소개한 최 작가는 본문에서, “죽막동의 ‘대막골 철마 설화’는 무엇보다도 서술 자체가 서사 구조를 갖췄다는 점에서 단순한 민담이 아님을 알 수 있다”며 “이러한 구조는 웬만한 설화에선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고 적고 “황금부채나 철마, 봉래도 같은 상징어들이 등장하며, 여기에 왜구를 물리치고 사람들의 목숨을 구제했다는 구체적인 활동 내용도 있어 뭔가 선조들이 강하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가 있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고 적었다.
 
ⓒ 디지털 부안일보 
“죽막동 ‘대막골의 철마’ 설화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바로 장보고의 출생지가 변산반도였음을 나타내려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그동안 장보고 출생지에 대해 조사해봤다는” 최 작가는, “흔히 장보고의 출생지를 전남 완도 또는 그 주변 섬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며 조목조목 그 이유를 설명해 놓았다. 모두 14쪽에 ‘대막골 철마 설화’ ‘황금부채와 철마’ ‘등주 봉래각’ ‘장보고와 정년’ ‘제사 유적’ ‘수성당과 해신당’ ‘장보고의 고향’ ‘관음신앙’ ‘수수께끼 지명들’ 등의 부제로 우리고장 변산이 해상왕 장보고의 고향이다고 추적하는 최 작가는 ‘두 해상 영웅’이란 부제에서 “격포의 궁항마을에서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한 사실을 떠올려보면 우연이 아닌 것만 같다”며 “우리 역사상 불세출의 두 해상 영웅, 장보고와 이순신이 이 변산에서 조우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적고있다. 한편 “변산이 장보고의 고향이다”고 역사를 추적한 최작가는 남원 출신으로 전북대 법대를 거쳐 서울대 환경대학원 수료했으며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마이산 석탑군의 비밀’ ‘천년의 비밀 운주사’ ‘베팅333’ 등의 작품을 내놓았으며 월간 신동아 5월호의 ‘최홍 작가의 역사추적’으로 “해상왕 장보고 고향은 완도 아닌 변산반도”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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