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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 하나의 불편함, 자원순환 정책 돌아봐야

이석기 기자 입력 2026.09.17 21:18 수정 2026.09.23 21:19

이석기/부안서림신문 대표
이석기/부안서림신문 대표
환경을 생각해 깨끗하게 씻은 투명페트병을 한 아름 들고 무인회수기 앞에 선 주민이 한참을 기다린다. 어렵게 차례가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기계가 가득 차 있다. 결국 페트병을 다시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조금은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환경을 위해 분리배출에 참여하려는 주민이 정작 분리배출 시설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부안지역에 설치된 투명페트병 무인회수기는 이제 낯선 시설이 아니다. 주민들이 페트병의 라벨을 제거해 기기에 넣으면 한 병당 10포인트를 적립하고, 일정 포인트 이상이면 현금으로 환급받을 수 있다. 수거된 페트병은 분쇄와 세척 과정을 거쳐 의류나 부직포 등의 재생원료로 활용된다.

주민들의 참여도 눈에 띄게 늘었다. 2023년 2,660명이던 이용자는 2024년 4,686명으로 증가했고, 지급된 포인트 역시 크게 늘었다. 이는 부안군의 자원순환 정책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는 의미다.

2022년 두 대로 시작한 무인회수기는 이제 17대까지 늘었다. 올해도 신규 회수기 2대가 추가될 예정이다. 폐전지와 종이팩, 투명페트병을 중점 재활용품목으로 지정하는 등 자원순환 정책도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시설은 늘었지만, 주민들이 느끼는 편리함까지 함께 늘어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부안군에 설치된 17대 가운데 11대가 부안읍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부안읍의 회수기 가운데 9대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내부에 설치돼 있고, 일반주택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회수기는 해뜰마루와 매창공원 등 2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특정 회수기에는 주민들이 몰린다. 한 번 이용하기 위해 한 시간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기계가 가득 차 아예 이용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반면 공동주택 내부에 설치된 회수기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공동주택 회수기를 입주민 중심으로 운영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회수기 운영에 필요한 전기료 등을 공동주택에서 부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형평성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는 없다.

“같은 부안군민인데 왜 아파트 안에 있는 회수기는 이용할 수 없는가.”

주민들이 던지는 이 질문은 단순한 불평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무인회수기가 특정 아파트의 사적 편의시설이 아니라 공공의 자원순환 정책 차원에서 설치된 시설이라면, 누구에게 어느 정도 개방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포인트 제도 역시 다시 생각해볼 대목이다.

포인트는 주민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실제로 이용자 증가가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경제적 보상이 있는 만큼 포인트를 적립하기 위해 많은 양의 페트병을 모으는 사람도 생겨날 수 있다.

일반 주민이 몇 병, 몇십 병을 가져오는 것과 포인트 적립을 목적으로 대량의 페트병을 모아오는 것은 이용 형태가 다르다. 그런데 이들이 같은 회수기를 이용한다면 자연스럽게 대기시간과 기기 포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1인 1회 50개’ 제한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양의 페트병을 수집한 주민은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 회수기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량 배출자를 위한 별도의 수거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

과거 일정 기간 운영됐던 대면수거 방식이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다. 왜 이 방식이 중단됐는지, 비용이나 관리상의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이제 부안군의 자원순환 정책은 ‘몇 대를 더 설치할 것인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회수기의 숫자보다 주민들이 실제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주민이 이용하는지, 어떤 기기가 자주 포화되는지, 시간대별 이용량은 어떠한지 데이터를 분석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필요한 곳에 회수기를 배치하고, 포화가 예상되는 기기는 수거주기를 앞당기는 방식의 관리가 필요하다.

기기의 수거량과 이용자 수, 포인트 지급액, 실제 재활용 처리량 등을 주민들에게 공개하는 것도 방법이다. 행정의 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추가설치가 필요한 곳도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자원순환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주민이 페트병 하나를 버리지 않고 깨끗하게 씻어 분리배출하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작은 행동이 계속 이어지려면 행정은 주민들이 불편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주민들이 무인회수기 앞에서 한 시간씩 줄을 서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환경의식이 높아졌다는 반가운 신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행정의 시설과 관리체계가 주민들의 참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좋은 정책은 주민들에게 참여를 요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주민들이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까지가 정책이다.

페트병 하나를 제대로 재활용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 페트병 하나를 제대로 배출하기 위해 주민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면, 이제는 그 불편함까지 정책의 일부로 바라봐야 한다.

부안의 투명페트병 무인회수기가 단순히 페트병을 많이 모으는 시설을 넘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편리하게 참여할 수 있는 자원순환의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결국 환경정책의 성패는 시설의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주민들의 작은 실천을 얼마나 편리하게,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만들어 주느냐에 달려 있다.

페트병 하나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부안의 자원순환 정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출발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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