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뉴스
오피니언
이석기 칼럼
여름 부안의 더위는 유난히 매서웠다.
어린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며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부안에서, 부안군이 해뜰마루 자연마당에 에어바운스를 활용한 물놀이장을 마련한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지난 7월 25일부터 8월 14일까지 21일 동안 운영된 물놀이장은 무더위에 지친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피서 공간이 됐을 것이다.
이 물놀이장 사업 자체를 탓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군민을 위해 마련한 여름철 물놀이 공간은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물놀이장이 철수한 지금부터다.
축구장 3분의 2 크기의 해뜰마루 자연마당을 둘러보면 한때 푸르렀던 잔디밭은 온데간데없고, 곳곳에 잔디가 눌리고 썩은 흔적이 남아 있다. 물놀이장 바닥에 깔았던 잔디 형 고무매트와 각종 시설물이 철거된 자리에는 흙과 썩은 잔디가 뒤섞여 있고, 곳곳에는 물기가 남아 있다.
물놀이장 시설을 철거한 뒤 썩어버린 잔디에서는 악취가 숨을 막히게 하고, 수십 미터 밖에서부터 코를 감싸야할 정도이다. 부안군민들이 산책하고 운동하며 즐겨 찾던 자연마당이 쾌적한 휴식공간이 아니라 악취가 풍기는 공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번쯤 따져봐야 할 대목이 있다.
과연 이 결과를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없었을까?
더 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안군은 이미 지난해 물놀이장 운영을 위한 예산으로 1억 5000여만원을 확보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여름 물놀이장 사업이 예정돼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물놀이장 운영을 불과 서너 달 앞둔 시점에 자연마당 잔디 개보수에 2억원가량의 예산을 투입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
잔디를 새로 정비해 놓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그 위에 대규모 물놀이장 시설을 설치했고, 결국 물놀이장이 끝난 뒤에는 새로 정비한 잔디 모두가 훼손되고 썩어버린 상황이다.
물론 부안군의 입장도 있을 것이다. 지난 5월 마실축제 때 자연마당이 먹거리장터 등 축제장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잔디 개보수가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군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축제 기간에는 무대와 각종 부스가 설치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만큼, 기존 잔디 상태만으로도 행사를 치르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는게 중론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축제가 끝난 뒤 잔디를 정비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더욱이 이미 여름철 물놀이장 운영이 예정돼 있었다면, 물놀이장 사업이 끝난 뒤 잔디를 정비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순서가 아니었을까?
행정은 단순히 예산을 확보하고 사업을 집행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한 사업을 추진할 때는 그 사업의 전후 과정과 다른 사업과의 연관성, 그리고 예산의 효율성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예산이라면 더욱 그렇다.
2억원이라는 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금이 모여 만들어진 소중한 재원이다. 그런 예산이 불과 몇 달 뒤 또 다른 사업 때문에 사실상 다시 손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면, 군민 입장에서는 ‘행정의 효율성이 제대로 검토됐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놀이장 운영을 위해 잔디 훼손은 어느 정도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행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업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했느냐, 그리고 다음 단계까지 내다보고 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공무원에게 전문성과 추진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제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바로 ‘행정의 영리함’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리함은 편법이나 요령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한발 앞을 내다보고, 여러 사업을 연결해 생각하고, 같은 예산을 쓰더라도 한 푼이라도 아끼는 지혜를 말한다.
사람은 똑똑한 사람보다 영리한 사람이 세상을 끌어간다는 말이 있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부안군민이 원하는 공무원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공무원이 아니다. 군민의 세금을 내 돈처럼 생각하고, 오늘의 사업뿐 아니라 내일의 결과까지 생각하는 공무원이다.
해뜰마루 자연마당 물놀이장이 아이들에게 즐거운 여름을 선물했다고 자화자찬만 할 일이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부안군의 모든 사업이 서로 따로 움직이지 않고, 사업의 순서와 시기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행정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군민의 세금은 실험비용이 아니다.
부안군민은 똑똑한 행정보다 영리한 행정, 그리고 오늘만 보는 행정보다 내일을 내다보는 행정을 원하고 있다.
해뜰마루의 푸른 잔디가 다시 복구되 날, 이번 일이 단순한 민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안 행정이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