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면 장등리 청운마을(이장 김준기)은 동진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3㎞ 지점 해발 10m에 위치한 마을이다.
현재 33가구에 김준기 이장 ‧ 정정임 부녀회장을 주축으로 50여명의 주민들이 오순도순 모여 살고있는 청운마을은, 이조 숙종 때 어사 박문수가 민정을 살피러 다녀갔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옛날 과거를 보려는 사람은 이곳 청운마을에서 숙박하고 지나가야 했는데, 청운에 푸른꿈을 가슴에 담고 지나간다고 해서 청운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조 철종 초기에 청운마을에 동진원이라는 사무소가 설치되었는데 지금의 여관이나 우체국 같은 일을 했다고 한다.
부안군 최초의 여관과 우체국이 설치된 곳으로 그 당시는 원님 골과 고포동, 샛터 3개뜸으로 형성이 되어 있었으나, 원님 골의 양반들이 세력 확장을 위해 청운마을을 합병한 것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일원인 삼중농장이 이곳에 주재하여 장등리, 안성리, 동전리, 내기리 등의 농장을 관리하였는데 매년 소작료 3,000석을 거두어 들였다고 한다.
또 도정공장을 설치하고 농민들의 양곡을 수탈하여 큰 배로 문포를 경유 군산을 거쳐 일본으로 전량 실어갔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시달림 속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과 일본인의 포악한 독재를 규탄한 할아버지가 계셨으니 그분이 바로 송덕봉 옹인데 청운마을의 3․1만세 운동의 유일한 지도자로 지금도 마을 주민의 귀감이 되고 있다.
송덕봉 옹은 태인 지방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일본인들에게 붙들려 8개월 동안 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한 인물이다.
이 청운마을은 40여년 전까지만 해도 삼중농장을 관리하던 사무소와 도정공장 잔해물이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의 건물이 남아있는 것이 보기 싫다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잔해물을 다 치우고 지금은 주춧돌만 쓸쓸히 뒹굴고 있다고 한다.
청운마을은 본래 밭과 논을 경작하며 사는 농촌마을로, 동진강 어귀에서 각종 어류를 잡아 농가소득을 올리기도 했던 마을이다.
청운마을은 주민들의 사고방식이 남달라, 남을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주민 모두가 내 부모 형제처럼 따뜻하게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