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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최진규칼럼-새만금 사람들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24.08.29 11:45 수정 2024.08.29 11:47

 
↑↑ 최 진 규 서림신문 논설위원
ⓒ 부안서림신문 
나의 고향은 계화도이며 태어날 당시 섬이었던 그곳은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었고 내가 고등학교시절 다시 새만금사업으로 인하여 이제는 바다가 없어진 곳이 되었다. 유년시절 산, , 바다에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지만 무엇보다 바다에 대한 추억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시절 새만금공사는 많은 이슈를 가지고 급격하게 추진되었다. 세계 최장 방조제와 여의도 면적의 140배 농지가 조성되고 우리아이들의 미래는 새만금이 먹거리가 된다는 청사진과 함께 내부개발공사로 인하여 조성되는 토지를 저렴한 가격으로 지역민에게 우선 매입 할 수 있게 해준다는 풍문들이 떠들썩했다.

새만금내측 어업인들에게는 바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조상 대대로 물려온 삶의 터전이고 황금어장이었다. ‘서게그레하나만으로 갯것을 하여 자녀들을 대학 보내고 출가를 시켰으니 바다는 과히 새만금 사람들에게는 비밀저금통 같은 존재였다. 지역민들이 이런 삶의 터전을 개발하는데 동의한 것은 내 삶은 못 배우고 힘들게 살아왔지만 내 자식 세대에는 새만금이 황금알을 낳는 희망이 되어 다음 세대에 윤택한 삶의 터전이 될 거라는 부푼 꿈과 기대가 있었기에 씨암탉을 내어주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로부터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까까머리 그 아들이 손주를 볼 나이가 되었지만 황금알을 낳을거라 믿었던 새만금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04년 완공을 목표로 시작된 새만금사업은 정부의 수차례 계획변경으로 인하여 2050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때라도 공사가 마무리될지 의문이 앞선다. 어쩌면 그때 그 시절 내 부모의 마음이 이제는 내리사랑으로 나의 자식 세대에게 희망으로 남기를 바라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새만금 공사가 시작되었던 1990년 부안군 인구는 10만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35년이 지난 지금 인구 5만이 무너진 상태이다. 새만금공사로 인하여 바다가 없어지고 갯벌이 사라지고 삶의 터전을 빼앗기면서 급격하게 인구는 줄어들었고 소멸위기에 봉착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의 고향 계화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긴지 오래되었으며 이제는 사람들도 지나다니지 않아 개도 짓는 방법을 잊어버렸다고 한다. 그동안 환경단체의 반대 및 정부계획의 변경, 수차례의 공사중단 등 우여곡절 끝에 내부기반시설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각종 대선, 총선때만 되면 장밋빛 청사진으로 지역민과 전북도민을 우려먹었던 정치권에 속아 표를 준 결과가 앞으로도 25년을 더 기다려야 계발계획이 마무리된다고 하니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과연 우리가 바라는 새만금의 청사진은 헛된 희망인가? 세계적인 추세는 간척사업으로 담수화했던 곳을 이제는 해수유통을 하고 있고 역 간척사업으로 기존 방조제를 허물어 갯벌생태계를 복원하는 추세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봐도 시화호는 담수화를 포기하고 해수유통을 함으로써 수질개선과 많은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왔다. 최종 정부계획을 보면 새만금에 대한 담수를 포기하고 해수유통으로 수질악화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으나 전면 해수유통은 진행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새만금 내측어장은 전국 백합생산의 80%를 생산하는 황금어장이었지만 이제 그때 그 시절의 갯벌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파괴된 환경은 되돌리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새만금을 바라보는 지역민이나 전북도민의 바램은 똑같을 것이다. 완전 개방을 해서 생태계 복원을 하던지, 아니면 집중적으로 예산을 투입하여 조기에 완공하는 것이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이제는 제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이 아닌 지역을 살리고 미래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하루빨리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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