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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칼럼-서림춘추

조덕연칼럼- 상처받지 않는 삶

서림신문 기자 입력 2023.03.10 21:07 수정 2023.03.10 09:07

조덕연칼럼- 상처받지 않는 삶
 
↑↑ 조 덕 연 서림신문 논설위원
ⓒ 부안서림신문 
“세 사람이 가면 그중에 반드시 너의 스승이 있다. 그의 좋은점은 따르고 좋지 못한점은 고쳐라(三人行必有我師焉)”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렇듯 우리는 살아오면서 합께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지혜를 얻었고 그 지식을 자양분 삼아 풍요를 이룰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함께 말과 글을 읽혔고 커가면서 친구들과 더불어 학교가는 길로 이어져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고 서로가 아는 지식을 말해줌으로서 지식을 교환할 수 있어 좋았다. 그중에 좋은 점은 취하고 나쁜 점은 버릴 것을 서로가 대화로 의논하여 서로를 완성하여왔다. 그때는 그랬다. 앎을 터득할 방법은 오로지 서로의 앎을 말함으로서 공유하는 방법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많이 말하고 알고있는 상식을 아는 체할수록 듣는 사람은 좋았고 많이 들을수록 지식은 쌓여갔다.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을 우리는 재담가라 칭했고 한때 우리는 재담가를 많이도 좋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컴퓨터나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대화의 단절을 요구한다. 찾아보면 바로 정확한 답이있어 궁금증을 해소할수 있음에 굳이 잘못일수도 있는 상대의 말이 필요 없게 되었고, 그래도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을 오지랖이 넓다고 비아냥거린다. 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옷의 앞자락, 즉 앞가슴을 감싸주는 부분을 말하며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남을 배려하고 감싸주는 마음이 넓다는 뜻이었으나, 다만 그 마음이 지나쳐 남을 귀찮게 하였을 때 우리는 오지랖이 넓다는 표현을 하게된다. 말은 곧 경전이 되었다. 논어는 춘추전국 시대에 사상가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유교 경전이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노나라에서 태어나 가난에 시달리고 천한 일에 종사하면서도 부지런히 이치를 탐구하고 실천하여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논어는 제자들의 고증을 거쳐 완성된 공자중심의 언행록이다. 불교경전은 ‘붓다’가 설하고 지켜온 ‘붓다’의 언행록이다. 기원전 6세기 인도의 카필라성에서 태어나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득도하고 80세에 입멸하기까지 45년 동안 제자들에게 설한 법문을 제자들이 모여 고증을 거쳐 결집한 법문들이다. 복음서는 ‘예수’의 언행록이다. 복음서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아온 예수의 삶을 그린 좋은 이야기이다. 예수 사후 40년경 예수의 제자로 추정되는 마르코가 예수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 마르코 복음서, 그후 마태오와 루카가 마르코를 근거하여 기록한 복음서가 기록으로 남아 4세기 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인정을 받아 3대 공관 복음서가 된다. 다만 유교경전이나 불교 경전처럼 함께한 이들의 검증 과정이 없어 학자들 마다 다른 견해가 따르기도 한다. 말은 우리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자 수단이다. 말로 인하여 인류는 발전하였고 말로 인하여 풍요로운 삶을 이룰 수 있었으며 말로 인하여 우리에게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역사가 형성될수 있었다. 말은 개인은 물론 인류가 흘러오면서 발전할수 있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말로 인하여 상처받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계노언에 이르기를, 가까운 사이라 해도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된다. 남의일에 입을 여는 것은 삼가라. 신세타령을 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빈정대는 것은 바보짓이니 절대 삼가라. 늙어가며 반드시 지켜야할 계율인 듯 상기된다. 전례시조 한수 떠오른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 말을것이, 남의 말 내가하면 남도 내말하는 것,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 까 하노라.” 우리의 삶이 상처받지 않으려면 남의 말 을 입에 오르는 습관에서 벗어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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