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연칼럼-함께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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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적 연
서림신문 논설위원 |
ⓒ 부안서림신문 | |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깊은 가을이다.
푸르던 나뭇잎은 단풍으로 물들고 오늘따라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다. 다소 쓸쓸함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분주한 아침일상을 마치고 명상에 잠길 무렵 한통의 전화가 온다. 한동네에서 태어나고 어렸을 적부터 함께했던 친구다. 어느새 70년을 훌쩍 넘겨버린 세월동안 한때는 서로 모르게, 또 한때는 아주가까이, 그리고 가끔씩 전화하던 친구가 점심함께 하자는 전화다.
삼십여 가구가 모여사는 조그마한 농촌마을 두집 빼고는 매일 끼니 걱정하는, 모두가 가난에 시달리는 마을이었다. 나와함께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는 네명 이었지만 학력은 초등학교가 전부였다. 나만은 부모님의 관심으로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행운이 따랐다. 오늘 만나는 친구역시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는 정도의 삶이었다. 일찍부터 남의집 깔담살이에 아이스케키 통을메고 삶의 전선에 뛰어든 삶이었다.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어였한 기업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적지않은 규모에 판매실적이 대단해서 일개 자치단체에서는 부자의 대열에 끼어있을 정도의 성장이었다. 많은 일자리도 만들었고 기부 또한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의 삶은 언제나 열심이었기에 더 진보된 앞날을 보며 큰 사회로 떠났다.
함께한 점심시간은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내일부터 그동안의 모든일 접고 30여년간 서로 떨어져 살았던 가족과 함께 하기로 합의했다한다. 그들이 다시 시작하는 삶 오랜세월 함께하지 못한 세월 보상받으며 열심히 살았으면 하나 떨어져있었던 기간만큼이나 적응하기 힘든 생활이 될것이다. 친구가 말하는 지옥의 삶이 아니려면 같은 마음으로 가는 공감의 시간에 적응해야한다. 나이먹어 눈은 어둡지 몸은 부자유스런데 마음까지 자제해야하는 어려움 서로 공감하면 편안한 생활이 되리라 위로하면서도 적응하기에 힘들 친구를 생각하니 안쓰러운 생각이 먼저다. 긴 점심시간 나누었던 인생이야기 그의 삶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사람은 누군가 곁에있어야 심신이 건강해지는 존재다.
함께 밥을먹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잠자고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고 서글퍼지고 몸과 마음에 구멍이 생긴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의 공감에 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마음으로 가는 것이다. 똑같이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의 느낌까지 이해해야 함에 있다. 상대의 느낌을 알았다면 내 마음대로 판단하지 않고 그 느낌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이때야 비로소 서로간의 신뢰가 돋고 그 신뢰가 쌓여 다정함을 이룰 수 있는 것, 함께 웃고 함께 울기도하고 아픈상처 감싸주고 마음의 근심 덜어주고 외로움이 따뜻할수 있었던 것은 함께하는 삶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다정하게 함께한 세월도 시간이 흐르면 각생各生으로 흐른다. 따로 식사하고 따로 놀고 어느새 침대는 싱글로 바뀌어있다.
자유로운 영혼들이기에 각자의 영혼이 주장하는 대로 삶이 바뀐 것이다. 이대로 흐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가 지켜보는 가운데 훨훨 날아가면 되는길 이것이 아름다운 인생의 길이리라.